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평생을 지켜나갈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서(恕)이니,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己所不欲勿施於人)이다. 서(恕)는 남의 입장을 자신의 입장으로 바꿔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서양 기독교의 황금률은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이다. 자신은 지키지 않으면서 남에게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도한 일이다. 지도층에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나라를 경륜하는 이들이 먼저 따르는 것이 의무이며 예의다.
부동산 정책을 두고 지도층의 ‘말 따로, 행동 따로’에 민심이 사납다.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전·현직 고위공직자 18명이 2채 이상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다주택을 보유한 참모진에게 한 채만 남기고 매각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대부분이 처분하지 않았다. 노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논란이 일자 노 실장은 한 채를 팔겠다고 했다. 그런데 서울 반포 집은 놔두고 청주 부동산을 내놓았다. 다주택을 매각하라고 한 취지는 ‘반포 집을 팔라’는 것이었다. ‘똘똘한 한 채만 남기고 띨띨한 한 채를 팔겠다는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국 두 채를 모두 내놓았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다. 앞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강남지역의 집값이 오르는 데 대해 ‘(자신은) 살아봐서 아는데 모두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무개념’ 발언으로 비난을 샀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경실련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의원 중 다주택 보유자는 42명이다. 이들 중 규제지역의 다주택 보유자는 21명이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서울 서초구와 대전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이에 그는 ‘대전 서구의 아파트를 매각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는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었다. 똘똘한 한 채는 그대로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서울 집은 놔두고 청주 집만 팔았다. ‘3선 도지사를 했으니 미련이 없어 버린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더욱 심각하다. 부동산 소유건수로는 민주당의 1.5배, 총액은 1.2배가량 된다.
그러니 부동산 정책이 먹혀들 리 만무하다. 부동산 정책이 헛돌았다. 불신은 높아졌고 서민들에게 ‘부동산 불패’ ‘강남 불패’의 인식은 견고해졌다. 서민들은 자금 마련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집을 장만하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에 주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른바 ‘영끌 매수(영혼까지 끌어들여서 사들이는 것)’이다. 특히 30대가 매수주체로 부상했다. 이들은 최근 몇년간 집값 오름세를 보면서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매수에 나섰다. ‘패닉 바잉(panic buying)’이다. 40~50대는 기존 주택을 팔고 상급지의 주택으로 이동하면서 매수세에 가담하고 있다.
베이비부머세대의 자녀인 에코 부머세대(1979~1985년생)인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주택시장의 주축이 된 배경에는 부모세대의 지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부모세대의 지원에 의한 주택마련은 부익부빈익빈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부의 대물림’의 고착화다.
민심의 분노가 심상치 않자 정부와 여당이 다급해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고위공직자 주택보유 실태 파악과 함께 다주택자의 조속한 주택매각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부동산 보유 및 매각 등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잡음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 참모뿐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들의 반발 분위기도 감지된다.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것은 시장을 잘못 읽고 정책도 갈지자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임대사업자 정책은 부동산의 공급을 막았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규제를 말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개발 이슈를 꺼내 불쏘시개를 만들었다. 여의도 통개발, 삼성동 역세권 개발, GTX 광역철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등 ‘인화성 재료’가 끊임없이 발표됐다. 정부는 핀셋규제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다음 투기지역 예고’로 받아들였다. ‘두더지잡기 게임’처럼 이쪽을 누르면 저쪽에서 투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정부 대책은 ‘뒷북’과 ‘땜질’에 그쳤다.
사회지도층의 부동산 매각은 부동산 광풍을 누그러뜨리는 데 심리적인 안정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 솔선수범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도층의 다주택 매도로 부동산시장이 안정될 것이라는 기대는 성급하다. 시중에 부동자금이 3000조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사상 최저의 금리에 부동자금이 부동산에 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21번의 대책은 모두 실패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2번째 대책도 결과가 뻔하다. 그런데 단기 미봉책만 난무한다. 대의에 맞고 현실을 반영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박종성 논설위원 p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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