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문제를 금융으로 풀지 말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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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제윤경의 안티재테크

복지 문제를 금융으로 풀지 말아야 하는 이유

by eKHonomy 2012. 6. 24.

제윤경 | 에듀머니 이사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을 이용하는 저신용자가 2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저신용자들은 제도금융권의 이용에 철저히 소외되어 있는 계층이다. 저신용자란 신용등급이 낮은, 7등급부터 10등급까지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책정 과정은 일관되지 않고, 체계적이지도 않으며, 투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 신용평가회사들이 여러 금융거래 정보를 토대로 자체적으로 등급을 산정하고 있다. 연체율과 금융거래 패턴들이 분석되어 등급 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유추할 뿐이다. 신용등급이 낮다는 것은 연체경험이 많고 위험한 신용대출 상품들을 자주 이용하면서 그마저도 연체를 반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험한 신용대출 상품이란 금리가 20% 이상인 카드론과 제2금융권 대출, 39%에 달하는 대부업 대출과 20% 이상의 수수료가 따라붙는 리볼빙 결제 방식 혹은 현금서비스와 같은 것들이다.


서울 신길동 영등포농협이 햇살론을 대출받으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런 상품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당연히 소득이 늘 불안정하거나 최저생계비에 겨우 해당되는 소득으로 살아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비정규직이어서 1년 단위로 자신의 노동력이 팔릴지 안 팔릴지를 걱정하며 불안에 갇혀 있는 사람. 큰 맘 먹고 모든 자산을 털어 조그만 가게를 열었지만 인근의 대형마트에 손님을 빼앗기고 하루하루 투자한 돈을 까먹고 있는 자영업자이거나 학자금 대출까지 끼고 졸업했으나 수십장의 이력서를 뿌려도 어느 한 곳 연락 없는 청년 실업자다. 혹은 겨우겨우 최저소득에 맞춰 생활을 이어가다 갑작스러운 질병 때문에 목돈을 불가피하게 써야 했던 사람들,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일자리를 갖기 힘든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문제는 경제구조적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복지서비스를 공급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복지의 사각지대가 넘쳐나고 기업들이 돈을 벌고도 투자하지 않아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 따르면 기업 이윤의 지표인 자본소득은 1990년 17.9%에서 2010년 27.5%로 증가했으나 국내총생산(GDP)에서 국내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한다. 기업들의 이익이 증가하는데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저소득계층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소득계층은 늘어났으나 복지비 지출은 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정부의 종합 서민금융대출마저 복지지출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서민 금융정책은 저신용자들에게 금융 애로를 해결해 주겠다는 취지로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연체 중이거나 부채가 보유자산의 50% 이상인 사람, 개인회생과 파산 면책을 받거나 진행 중인 사람들은 모두 대상에서 제외된다. 앞서 말했듯 저소득계층은 일자리가 불안해 사금융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서민금융 제외 대상도 대부분의 저신용 취약계층이다. 물론 이들에게 정부가 돈을 빌려주게 되면 서민금융 기금이 부실해질 위험이 있다. 적극적으로 빌려주려니 떼일 것이 분명하고 안 빌려 주려니 서민금융이라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진다. 복지로 해결해야 하는 것을 금융으로 하겠다는 발상이 왜 문제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 또한 여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복지와 금융을 분리해야 한다. 서민금융으로 주택 및 창업 자금 등을 활용케 하고 생활비와 의료비 등 긴급자금은 복지비로 해결해야 한다. 서민금융을 통해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거나 기존의 가계 고정비용이 줄어들어야 빚을 갚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생활비가 부족해 돈을 빌리면 당연히 갚을 수 없다. 


복지의 영역에 서민금융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대단히 무지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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