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셀프 검증을 믿을 수 없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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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고]셀프 검증을 믿을 수 없는 까닭

by eKHonomy 2018. 1. 4.

파이로-고속로사업은 원전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파이로프로세싱법으로 재처리하여 ‘고속로’라는 새로운 원전의 핵연료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이 실행되려면 기존의 원전보다 훨씬 위험하고 비싼 10기 이상의 ‘고속로’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정통부(과기정통부)는 지난해 12월9일 사업재검토위원회(위원회)를 구성하여, 파이로-고속로사업에 대한 기술성, 경제성, 안전성을 검토하고 그 결과에 따라 2020년까지 계획된 파이로-고속로 연구개발을 계속 추진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이로-고속로사업은 4대강사업을 능가하는 대국민사기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원자력계 내부에서조차 실현불가능성, 위험성 등의 이유로 반대가 심한 실정이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 10월 시민들이 감사원에 공익감사까지 청구하였다. 이런 여론 때문에 이 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그동안 이 사업을 추진해온 과기정통부가 사업 재검토의 주체라는 점이다. 위원회는 원자력 분야에 근무하지 않는 전문가 7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이 과기정통부의 프로젝트나 연구비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과기정통부의 연구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낼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기정통부는 재검토 기간 동안 찬반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는 온라인 시스템을 운영하여 검증에 활용한 자료를 공개하며, 찬반 양측이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양측의 주장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하겠다고 하였지만 이러한 시스템은 공개되지 않았다.

위원회를 상대로 찬성, 반대 양측 패널이 설명하고 토론하는 구조인데 ‘사업의 재검토’인 만큼 그동안 사업을 해온 원자력연구원이 제출한 자료를 보고 반대 측에서 반박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자료공개는 없었으며, 약속과 달리 반대 측이 반론을 펼 수 있는 공정한 여건이 보장되고 있지 않다.

 

게다가 위원회가 찬반 양측에 보낸 질의서는 그 내용이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답변 시 논문, 보고서 등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면서 답변 시한을 8일밖에 주지 않았다. 찬성 측은 모든 정보를 독점하고 있고, 연구인력 300명의 인적·물적 지원을 받고 있는 반면, 어느 하나도 없는 반대 측에는 아주 짧은 기간만을 주면서 해보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질의내용도 중립성을 상실한 채 자의적이거나 찬성을 유도하는 방식, 나아가 반대 측이 기존에 발표한 내용을 고의로 왜곡하는 등 공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정황들이 상당하다. 심지어 질의내용에는 원자력연구원조차도 알 수 없는 극히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답변을 반대 측에 요구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파이로-고속로 시스템에서 최종적으로 처분해야 하는 고준위·중저준위 물질의 종류와 총량, 처분비용을 반대 측보고 답변하라는 식이다. 파이로는 세계적으로 실제로 해본 경험이 없고, 고속로도 독일·프랑스·일본 등 선진국들이 모두 상용화에 실패한 사업이다. 그동안 연구를 해온 원자력연구원이 답변자료를 내놓으면 반대 측에서 이를 검토하여 반박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데도 위원회는 원자력연구원이 답변해야 할 내용을 반대 측에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예산을 낭비해온 과기정통부에 맡겨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김영희 | 변호사·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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