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곡물가격이 무섭게 오르고 있다. 옥수수 선물가격은 지난 20일 현재 t당 325달러, 콩은 646달러를 각각 기록해 2008년 세계적인 곡물 파동 당시 가격대를 이미 넘어섰다. 사상 최고치다. 최대 농산물 생산국인 미국이 50년 만의 가뭄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국제 투기자본이 곡물 사재기에 뛰어든 것도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곡물값이 올라 전반적인 물가가 뛰어오르는 현상을 ‘애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영어의 농업(애그리컬처)과 인플레이션을 합친 말이다.
우리로서는 사상 초유의 애그플레이션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없는 처지다. 밀과 옥수수 수요의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는 만큼 당장 먹을거리 물가가 걱정이다. 일부 맥주와 라면 값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곧 오른다. 우유와 즉석밥 값은 이미 올랐다. 먹을거리 물가가 오르면 서민층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소득에서 차지하는 먹을거리 비중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내리기가 어렵다. 국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농산물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야채를 고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면 4~7개월이 지난 다음 국내 물가에 반영된다. 올해 3분기(7~9월) 국제 곡물가격은 올해 말과 내년 1분기 국내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국제 밀 가격이 오르는 것을 감안해 올해 말과 내년 초 국내 밀가루 값이 올해 2분기보다 27.5%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농무부는 보고서에서 내년 애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
정부는 그동안 애그플레이션 대책에 무심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내놓은 대책도 밀과 콩의 무관세 수입과 쌀가루로 밀가루를 대체하겠다는 것 정도다. 2008년 곡물 파동 당시 대책을 다시 꺼내 손질해 내놓았다. 그동안 마련했던 대책조차 별무소득인 점도 문제다. 농수산물유통공사를 통해 미국 시카고에 국제 곡물회사를 만들어 곡물을 직도입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세웠으나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밀 자급률을 2010년 1%에서 2015년 10%까지 늘린다고 했으나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애그플레이션이 올해로 그치지 않고 내년에도 수시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가까운 미래 식량전쟁을 예고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 시장의 식량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식량공급이 모자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상기후와 같은 변수가 언제든 생길 수 있다. 2012년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6%에 불과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다음에 호들갑을 떨 게 아니라, 국산 농산물 소비 촉진과 해외 식량기지 확보와 같은 종합대책을 새롭게 다듬어 단기와 중장기로 나누어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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