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 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자산이 금융실명제 시행 당시 27개 계좌 61억8000만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금융실명제 이전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재산에 대해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유권해석에 따라 검사에 나선 결과 이같이 확인된 것이다. 이 회장이 내야 하는 과징금은 30억9000만원이다. 금감원은 명확하지 않은 삼성증권 4개 계좌에 대해 확인작업을 더 벌이겠다고 했다. 금융위는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에 개설된 탈법 목적의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입법을 통해 금융실명제의 법망을 피해갈 수 없도록 앞뒤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과징금이 부과되는 대상은 이 회장이 보유한 차명계좌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현행법상 ‘실명제 실시 이후에 남의 명의로 실명전환한 계좌’는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이 회장의 대부분 차명재산은 실명제 전환 뒤 다른 사람의 명의로 계좌를 튼 것들이다. 그 금액은 5조원에 달한다. 2008년 4월 조준웅 삼성특검이 발표한 4조5000억원에다 경찰이 발표한 5000억원에 가까운 차명재산을 합한 금액이다. 당국이 과징금 50%를 부과하면 적어도 2조원이 넘는다. 이것이 제외된다면 몸통은 빠져나가고 곁가지에만 과징금을 물리는 것이 된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데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금융당국은 삼성에 대한 과징금을 물리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비호해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번에 이 회장에게 과징금을 물린 실명제 시행 전의 차명계좌에 대해서도 거부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 때문에 “재벌보다 관료가 더 적폐였다”는 참담한 말도 들린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수십년이 흘렀고, 조준웅 삼성특검이 이 회장의 차명재산을 발표한 지도 10년이 됐다. 그러나 이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해 금융당국은 수수방관해왔다. 재벌과 금융당국 간의 유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 회장의 차명재산에 대해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다. 검찰은 이달 초 국세청과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탈법 목적의 차명계좌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약속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발표가 사후약방문이라거나 면피성 조치라는 뒷말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발표가 허언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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