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7일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편취한 혐의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또 태광산업 등 계열사 19곳을 고발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21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티시스가 그룹 내 골프장을 인수한 뒤 실적이 악화되자 골프장을 김치사업에 뛰어들도록 한 뒤 제품을 직원들에게 비싸게 강매했다고 한다. 이 같은 행태는 와인회사 메르뱅을 통해서도 이어졌다. 계열사에 임직원 선물용으로 와인을 고가에 구입하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수익을 총수일가에게 배당이나 급여 형태로 지급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강매를 통해 총수일가에 들어간 돈이 33억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벌기업의 총수일가가 직원들을 상대로 김치, 와인 장사까지 한 것은 해도 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횡령·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2차 파기환송심 1회 공판에 출석,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위가 태광의 이번 내부거래에서 주목한 부분은 티시스와 메르뱅이 총수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라는 점이다. 공정위는 티시스와 메르뱅에 일감몰아주기로 기업가치를 높인 뒤 그룹의 지배력을 확대해 경영권 승계에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태광의 지주회사인 티알엔이 티시스에서 분할돼 설립된 기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총수일가가 보유한 기업의 가치를 뻥튀기해 경영승계의 도구로 악용한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익히 알고 있듯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그룹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를 설립할 때 3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매입했다. 그 뒤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현대글로비스는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수백배의 차익은 정 부회장에게 돌아갔다. 이는 현대차그룹만의 일이 아니다. 재벌마다 부와 경영권을 물려주는 수단으로 일감몰아주기가 끊임없이 악용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합리적인 고려 없이 내부거래로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데 대한 첫 제재’라고 했다. 재벌 매출의 절반 이상은 내부 거래로 발생한다. 지난해 총수가 있는 28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내부거래액이 전년보다 증가했다는 분석도 있다. 재벌은 일감몰아주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몰아주기는 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린다. 경쟁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지속 가능성도 훼손할 수 있다. 재벌들은 태광사태를 일감몰아주기를 근절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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