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엊그제 기자들과 ‘치맥’을 함께하며 경제 현안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대중을 상대해온 능숙한 정치인의 모습이 떠올려지지만 소통 측면에서 나쁠 것은 없다. ‘성장률보다는 먹고사는 게 나아져야 한다’ ‘대기업이 환율 효과로 수출을 많이 한들 국민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등 의미있는 발언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한국은 아직 청장년 경제인데 조로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향후 5~10년은 높은 성장률로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총론은 삶의 질을 거론하면서 결국은 성장론으로 회귀했다. 자기모순이다. 환율 언급은 시장에서 ‘원고 용인’으로 해석되자 금융위기 직후 상황을 얘기한 것이라며 서둘러 덮었다. 말로는 서민을 앞세우면서도 기존 성장지상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은 이유로 부동산을 꼽으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와 추경을 거론한 것도 난센스다. LTV 등은 부동산 대출 때 상환능력 내에서 돈을 빌려주도록 하는 것이다. 완화효과도 불분명하지만 1000조원을 넘어 위험수준에 도달한 가계부채를 더 악화시킬 우려가 크다. 성장률 전망치가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의미하는 추경을 얘기하는 것 역시 정치적 접근법으로 보인다.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내정된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13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으며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최 내정자의 발언과 기존의 인식을 종합하면 한국경제는 성장에 더 매진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출기업에는 감세와 고환율 정책, 그리고 내수부양을 위한 경기진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경제가 나아지면 삶의 질은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는 낙수효과 신봉론이 숨어있다. 현재의 복잡다기한 경제상황을 1970년대 고도성장기의 정책으로 단순화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현재 우리 경제는 전례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글로벌 위기는 상시화하고, 저출산·고령화로 저성장은 추세적 상황이 됐다. 소득불평등도 심화됐다. 소비를 늘리려 해도 열 지갑 자체가 없는 게 서민 다수의 현실이다. 오죽하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조차 내수기반을 확대하려면 불평등의 정도를 줄이는 것이 좋다고까지 했겠는가.
최 내정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실세다. 추진력과 장악력도 뛰어나다. 우리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부총리도 원치 않지만, 복심으로 행세하며 70년대식 경제논리로 사안을 일도양단하는 부총리도 원치 않는다. 최 내정자가 진정 서민 삶의 개선을 원한다면 성장과 재분배의 방식에 더 깊은 고민이 있었으면 한다. 입에 달고 다니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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