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현재 자영업자 대출액은 520조원에 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정보가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영업자 차주 160만가구를 처음으로 전수조사해 내놓은 결과이다. 이는 한국은행이 발표한 480조원보다 40조원 많은 액수다. 한은은 한국신용정보로부터 제공받은 차주 100만가구의 자료를 토대로 대출액을 추정해왔다. 이번 조사결과는 자영업자 문제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증가폭이 가파르다. 대출 총액은 2012년 354조원에서 4년 만에 47% 늘었다. 전체 가계부채가 1433조원인 점을 떠올리면 자영업자 빚이 40%에 달하는 셈이다. 질도 나쁘다. 자영업자 중 연간 3000만원 미만 소득자는 4년 전에 비해 3% 이상 늘어나 21.8%에 달했다. 이들의 가처분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도 41.9%로 상용근로자 가구 30.1%보다 훨씬 높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금리가 올라가는 추세임을 감안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활화산인 셈이다. 대출금리가 0.1%포인트만 올라가도 폐업 위험도가 10% 가까이 늘어난다.
자영업자 문제가 한국 경제의 취약점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퇴직자들은 은퇴 이후의 삶이 길어졌지만 노후 준비는커녕 자녀 뒷바라지도 끝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도리 없이 빚을 내 치킨집·편의점·커피전문점 창업으로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한정된 시장을 놓고 제살 뜯기식 과당경쟁을 벌이다 가진 돈을 모두 날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창업 5년도 안돼 열에 일곱은 문을 닫는다. 자영업자의 절반은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번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제조업 취업자가 줄어드는 대신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것은 익숙한 광경이다. 실제 올 들어 가계대출은 둔화 추세지만 자영업 대출은 계속 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올 초 자영업자를 유형별로 나눠 과당경쟁이 예상되는 업종과 지역 대출 억제 등의 대책을 내놨다. 일례로 치킨집이 몰려 있는 지역에는 대출 문턱을 높이겠다는 식이다. 이런 접근법은 대출 관리는 될 수 있겠지만 자영업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자영업자는 대부분 생계형이다. 실패하면 가족 전체가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선후보들은 앞다퉈 상가 임차권 보장 등 자영업 보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대책으로는 원인 제거는커녕 땜질도 할 수 없다. 일자리 창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 해소, 사회안전망 강화 등 큰 그림 속에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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