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ISD·WTO로는 사드 보복 해결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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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세상읽기]ISD·WTO로는 사드 보복 해결 못한다

by eKHonomy 2017. 3. 28.

“나는 중국을 아주 좋아한다. 중국은 조상의 고향이다. 롯데는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기를 희망한다.”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이 지난 23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인터뷰하면서 한 말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부당하다. 중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을 차별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투자자를 공정하게 대우할 원칙을 저버린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롯데는 피해자이다. 그런데도 왜 롯데의 신 회장은 오히려 중국에 애정이 있다고 말했을까?

 

같은 시기에 론스타라는 미국 기업은 벌써 5년째 한국을 국제중재(ISD)에 회부해 5조원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이 판결이 곧 날 듯하다. 양측은 5년이라는 기간에 충분히 공격과 방어를 마쳤다. 심지어 변호사 비용에 대해서조차 작년 7월, 8월에 공방을 주고받았다. 당사자가 할 모든 절차를 마쳤다. 그러고도 그 뒤로 6개월이 더 지났다. 판결이 머지않았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쇼윈도에 26일 중국어로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롯데그룹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를 제공한 뒤 중국의 다양한 보복 조치를 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애시당초 론스타에는 ISD를 제기할 자격이 없었다. 처음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할 대주주 자격이 없었다. 즉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의 보호 대상 ‘투자자’가 아니다.

 

게다가 론스타는 ISD를 걸기 전에, 이미 한국 법원에 세무당국의 과세 처분에 대해 소를 제기했다. 그러므로 과세를 다시 ISD에서 다툴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왜 롯데는 론스타처럼 ISD로 중국에 대항하지 못하는가? 롯데에는 중국을 ISD로 걸 권한이 있다. 한국과 중국의 투자자 보호 협정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ISD가 있다.

ISD는 본디 강자들의 장치이며, 국제 금융자본을 위한 규칙이다. 롯데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지 않을 각오를 해야만 ISD로 중국을 제소할 수 있다. 반대로 론스타와 같이 각 나라를 드나드는 국제 펀드는 특정국에서의 사업 계속 여부를 걱정하지 않는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FTA 관료들은 한·미 FTA의 ISD가 한국과 미국 두 나라 기업 모두의 권리이므로 공평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론스타와 롯데의 현실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FTA 관료들은 한·미 FTA의 ISD는 위험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구속력 있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를 입법하지 못했고, 저탄소차 보조금을 시행하지 못한 배경에는 한·미 FTA의 ISD가 있다. 한·미 FTA의 ISD가 위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한국이 알아서 ISD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스스로 없앤 것이다.

 

한·미 FTA의 ISD를 폐지해야 한다. 트럼프의 언행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을 보호하는 장치가 아니다. 미국은 미 무역대표부가 인정하였듯이 단 한 차례도 ISD에서 패소한 사실이 없다. 미국이 패소하는 날 지금과 같은 모습의 ISD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까지 한·미 FTA ISD는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이익에 거슬리는 한국의 법률과 행정, 심지어 법원 판결에 대해서조차 끊임없이 제한을 가하고 압박할 것이다.

 

사드 해법은 있다. 중국과 한국은 서로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수용하고, 한국은 탐지 범위가 북한 지역에만 미치는 레이더를 수용하면 된다. 한국과 중국은 서로 가까운 나라의 염려를 알아주어야 한다.

 

그런데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는 현실을 보지 않는다. 주관적인 희망과 객관적 현실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한다.

 

황 대행의 관료들이 사드 문제 해결 방안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들고나오는 장면은 한편의 희극이요, 동문서답이다. 피해당사자인 롯데조차 자신에게 권한이 있는 ISD를 제기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드를 제소해서 WTO 판결이 나오려면 적게 잡아도 2년은 걸릴 것이다. 이 기간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스스로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사드 보복을 철회할 수 없을 것이다.

 

사드 해법은 따로 있다. 현실을 현실로 보면 된다. ISD도, WTO도 사드 보복을 해결할 수 없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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