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은 정말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정치든 종교든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위로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렇게 깊게 느껴본 것이 처음인 것 같다. 그는 상징을 사용하는 데 단호하였고, 의사를 표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감동했다. 그가 던져준 메시지 하나하나를 보면서 지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가능하기도 하구나, 정말로 황홀했다.
그 꿈결 같던 며칠이 지나고 문득 세상을 돌아보니, ‘시궁창’이라는 표현 그대로 현실은 시궁창이다. 세월호 참상은 진상도 대책도 없이, 이번에는 야당이 끊임없이 처박히게 되었다. 진짜 안쓰러워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다못해 점심 단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고민이 든다. 그런다고 해결이 되겠나. 우리의 삶이라는 게 왜 이렇게 무기력하고 집권자 앞에서 비루해지는 것인가!
한편으로는 의료 영리화 등 영리화로 상징되는 조치들이 숨가쁘게 나오는 중이다. 또 한편으로는 산지관광특구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온갖 삽질 조치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여기에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산을 깎아서 병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일찍이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는 표현을 쓴 이후 이렇게 파괴적으로 창조적인 발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 빚내서 집사고 재건축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해주는 또 다른 조치가 곧 발표된다고 한다.
신자유주의와 토건을 동시에 하겠다는 발상, 보통의 보수들의 경제는 그중에 한 가지만 한다. 일본이 고이즈미 시절 우정국을 민영화할 때에는, 그때까지 일본 토건의 상징이었던 ‘일본의 곳간’이라는 대장성을 해체하는 일도 동시에 추진했다. 민영화와 토건을 동시에 하겠다는 것은 빈부 격차를 더욱 극대화하는 격차 사회로의 이전도 압축적으로 하겠다는 발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교황이 얘기했던 경제적 불평등, 딱 그 방향으로 지금 정부가 맹렬하게 달려가는 중이다. 그러지 말라고 했던 교황의 목소리만 잔상에 남을 뿐 현실은 시궁창,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으로 우리는 열심히 간다.
생태적으로 건전하고 경제적으로 따뜻한 그런 사회를 나는 꿈꾸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강이든 산이든 걸리기만 하면 그대로 파헤치던 그 시대로 가는 중이다. ‘없으면 불쌍하지’, 그렇게 부자들만을 위해서 정책이 가다듬어지는 사회로 가는 중이다. 한국에서 젊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정책적 대상으로 주목받는 유일한 순간은 그들이 은행에서 빚내서 집을 사겠다고 하는 순간뿐이 아닌가? 빚 안 내겠다고 마음먹으면, 이제 이들이 지금 정부에서 쏟아내고 있는 수많은 조치에서 조금이라도 수혜를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
그렇지만 몇 년 지나면 오히려 지금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다시 한번 억지로라도 교황 방한을 생각하며 웃어보려고 했던 생각이 싹 사라지게 만든다. 선거하면 또 질 것 아니냐? 지금 야당 하는 걸로 봐서는 다음 총선도, 다음 대선도 별로 가망 없어 보인다. 그 뒤에는 시궁창에서 더 깊은 시궁창으로. 그리고 더욱더 깊은 시궁창으로 가는 길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떻게 시궁창에서 나올 것인가, 이제는 절박하게 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생태도 망하고 경제도 망하는 지금의 길, 이거 영 아니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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