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나, 해양경찰서 소속 경비선을 타고 바닷가를 돌아보는 일이 생겼다. EBS <하나뿐인 지구> 제작팀과 국제 연안정비의 날을 맞아 통영과 완도를 돌아보았다. 9월 셋째 토요일이 바로 그 날이다. 통영에서 완도까지, 갖은 모양새의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는 딱 보기에도 처참했다. 이게 하루 날 잡아서 치운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뭐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완도 해경의 호의로 경비선을 타고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연안 절벽 몇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수많은 페트병의 해안을 이루고 있었다.
20세기 이후, 인간은 더 이상 철기시대를 사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더 많은 그리고 더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을 사용한다. 우리가 관리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재활용 경로를 따라서 회수되는 한정된 분량의 플라스틱일 뿐, 그냥 버려지는 플라스틱에 대해서는 통계 작업도 제대로 안 된다.
가볍고 물에 뜨는 플라스틱은 사람의 손을 떠난 순간, 만약 그것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지지 않았다면 결국에는 물길을 따라서 강으로 가게 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강 상류와 하류에서 폐플라스틱 쓰레기를 가지고 네가 처리해라, 아니 네가 처리해라, 하며 지자체 사이의 분규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비가 오면 강을 따라 내려간 페트병 등 각종 플라스틱이 결국 모이는 곳은 바다이다. 자, 여기서부터 사태가 심각해진다. 태양광에 의해서 분해되는 플라스틱이 물속에 떠다니면서 자연적인 분해과정이 정지된 상태로, 들어오기만 하는 난감한 상황! 태평양으로 모인 플라스틱이 한반도의 몇 배 규모로 플라스틱 섬을 형성하고 있다니!
여기에 국가별 분규도 폭발 직전이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은 많은 분량이 일본으로 가니까,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뭔가 조치를 취해달라, 그런 심경이지 않겠는가. 반면 서해안으로 밀려드는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중국에서 오는 것이다. 서로 “당신이 신경을 좀 써라”, 이렇게 눈치 보면서 아무도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는 것, 이게 현 상황인 듯싶다.
도시에서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생수나 음료수가 담겼던 페트병이 바다로 가든 말든, 그런 것들이 물새나 바다거북에게 치명적인 해를 주든 말든, 신경쓸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진짜 공포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미세한 분말로 변해버린 플라스틱이 바다 생태계의 아주 기초 단계에서부터 누적되기 시작할 것이고, 이게 돌고 돌아서 모든 생태계의 최종 포식자인 사람의 몸에까지 들어오지 않겠는가. 과학자들이 최근 플라스틱을 오염물질로 규정하자고 하는 논의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지구 생태계는 모두 연결돼 있어 결국은 페트병이나 라면봉투를 아무 데나 버린 사람의 몸에까지 돌아오게 마련이다.
한국 연안의 플라스틱 오염의 또 다른 원인은 굴 양식업 등에서 사용하는 다량의 스티로폼이다. 이건 대체재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별 방법이 없다. 여기에 연안 낚시꾼들이 마구 버린 플라스틱들, 이거야말로 홍보와 계도 외에는 답이 없을 듯싶다. 오존층 파괴에 대한 몬트리올 의정서, 온실가스에 대한 기후변화협약, 다음 번 대규모 국제협약이 플라스틱 협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과학적·기술적 해법이 획기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 일상생활에서 함부로 플라스틱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 하나마나한 얘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해경과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힘만으로는 연안의 플라스틱을 모두 치울 수가 없다. 무심코 버린 페트병, 결국 생태계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 입으로 다시 들어오는 순간, 그런 건 좀 막아야 하지 않겠나.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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