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비가 지독하게 왔다. 장마가 유난히 길었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이제는 열대성 스콜이 의심될 정도의 국지성 폭우가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제습기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작년까지 살던 집은 장마철이면 곰팡이가 실내 곳곳에 피어났다. 어른들은 괜찮았는데, 같이 사는 고양이 손에 곰팡이가 피었다. 털을 다 밀어내고 한 달간 연고를 발라주었다. 잘못하면 고양이 피부염으로 전신에 퍼진다고 해서, 진짜 식겁했다. 올해는 이제 막 돌 지난 아기를 키우니,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장마철, 제습기의 성능은 시각적으로 놀라웠다.
“누가 한국을 물부족 국가라고 했는가?”
몇 시간 만에 제습기의 가득 찬 물통을 비우면서 내 입에서 저절로 나온 소리였다. 유엔은 한국을 물부족 국가로 분류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하나라도 더 댐을 짓고 싶어하는 ‘댐쟁이’들이 우리는 물이 부족하다는 신화를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몇 리터의 물을 공기 중에서 뽑아내는 제습기를 보면서, 봐, 물은 이렇게 많잖아! 그런 말이 입에서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장마인지, 열대성 스콜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국의 장마철은 국지성 호우와 결합되면서 우기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많은 아열대 지역처럼 우리의 기후도 건기와 우기로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올여름 제습기 업체들이 대박을 올렸고, 그런 조그만 가전 시장에까지 들어가야 하나 머뭇거리던 대기업들까지 치고 들어왔다. 동시에 각종 제습제품과 곰팡이 방지제까지 성업을 이루었다.
제습기를 쓰면서, 사실 내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세계적으로 하나 정도 쓰는 냉장고를 우리나라는 집집마다 세 개나 쓴다. 김치냉장고가 하나 더 필요하고, 제빙기를 쓰는 집도 있고, 냉수를 제공하는 정수기도 이제는 기본이다. 냉매를 압축해서 온도를 낮추는 기본 기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낮추어진 온도 장치에 공기를 통과시켜 물을 뽑아내는 제습기도 기본적으로 냉장고와 다르지는 않다. 에어컨의 6분의 1 정도 전기를 사용하지만, 냉장고보다 전기 사용량이 적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의 기후 패턴에서 우기 하나가 특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안 그래도 전기를 줄이자고 하면서 상시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전기 용품 하나가 늘어나는 것이다. 겨울철에 열심히 돌아가는 제습기가 보건 문제를 일으킨 다음, 물을 사용해서 공기를 정화하는 에어워셔라는 제품이 올가을 제습기에 이은 또 다른 대박 상품이 될 조짐을 보인다. 높은 습기는 진균을 활성화시킨다. 바로 곰팡이!
(경향DB)
이제 우리는 딜레마에 부딪혔다. 전기를 더 쓰자니 핵 마피아들이 신날 것이고, 그렇다고 안 쓰자니 이번에는 곰팡이라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히고. 아열대 기후로 전환되면서 생활 속의 환경과 보건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핵심 중의 하나가 곰팡이이다.
해법은 두 가지이다. 나는 내년에 집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로 했다. 각 건물별로 분산형 전원을 시도하는 것은 작은 해법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곰팡이를 예방하는 아로마 오일들이 있다. 해충 기피제 성분들이 진균의 번식 억제에는 상당히 효과적이다.
전통적인 약제라 보건 문제는 검증된 것이고, 무엇보다 에너지를 추가로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습기와의 전쟁, 이걸 개인이 할 것이냐, 정부가 사회 인프라로 보고 직접 추진할 것이냐, 바야흐로 우리는 그 분기점에 서 있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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