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제 이야기]1년에 78벌의 옷을 사는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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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우석훈의 생태경제 이야기

[생태경제 이야기]1년에 78벌의 옷을 사는 청춘들

by eKHonomy 2014. 1. 17.

작년에 내가 몇 벌의 옷을 샀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바지 두 벌, 셔츠 세 벌, 후드티 두 벌, 그리고 봄·가을용 점퍼와 겨울용 패딩, 그렇게 여덟 벌을 샀다. 그러니 내가 구식 인간이다. 그 대신 아기용 옷은 셀 수도 없이 샀다. 한 계절도 다 가기 전에 이미 작아져버리는 아기 옷 때문에 내 옷까지는 차례가 오지도 않는다.

어느 패션몰에서 설문조사를 했다. 평균나이 21.4세, 옷 구매주기 주당 1.5회, 연평균 구매 78벌. 이게 소위 패스트패션족이 세상을 살아가는 양상이다. 이번에는 EBS <하나뿐인 지구> 제작팀과 정말로 흥미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버려진 옷들 집하장에서 발견한 옷 중에는 아직 가격표도 떼지 않은 새 옷이 있었다. 나도 후드티 한 벌을 사봤는데, 그럭저럭 따뜻하고, 몇 번 입을 정도는 되어 보였다. 매장가격, 9000원! 상상초월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패션시장을 놓고 보면 동시대의 흐름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그야말로 21세기 현상이다.

 

스파 브랜드 H&M (경향DB)

한 가지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였던 엠마 왓슨으로 상징되는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패션에 대한 흐름이다. 이제는 힘이 한풀 꺾인 밀라노 위로 올라가 파리와 함께 세계 패션시장의 한 축이 된 런던 등의 에코패션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보기 어렵지만 외국 디자이너들이나 모델 입에서 에코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이제 뉴스도 아니다.

그 반대편에는 스파(SPA)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패스트패션이 자리하고 있다. 1회용 시대라는 말이 있지만, 패스트패션족에게 이 스파 브랜드의 옷들은 1회용도 못된다. 정말 가격표도 떼지 않은 옷들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격을 낮추는 원리야 간단하다. 방글라데시 같은 곳에서 옷 한 벌당 0.18달러를 지불한다. 지역 생태계 파괴를 감수하고 대형 면화 농장을 만든다. 옷감과 염색 처리에 사용되는 폐수는 현지에 방출한다. 그러면 싸진다. 그거야 어차피 남의 나라 문제 아니냐, 이럴 수도 있다. 결국 자신이 입는 최종적인 옷에만 유해물질이 없으면 되는 거 아니냐? 작게 보면 그렇기는 하지만, 양식 있는 사람이 자랑할 일은 아니다.

예전에는 옷값이 비쌌다. 양복을 일일이 맞추어 입다가 프레타포르테라고 불리던 기성복이 나왔을 때, 서민들에게는 정말 혁명 같은 일이었다. 그래도 패스트패션 수준은 아니었다. 싼 옷을 사 입겠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당신들 나빠요, 이럴 수도 없다. 하여간 한국의 패스트패션 시장도 이제 1조원 규모를 넘어섰다. 전 세계 패션산업은 2000조원가량 된다. 이 중의 10%를 슬로패션으로 전환하자는 것이 패션 액티비스트들의 1차 목표다.

가난한 사람들의 에코패션, 고쳐 입고 돌려입는 수밖에 없다. 슬로패션이 패스트패션에 비해, 너무 슬로! 점점 클라이맥스로 가는 스파를 보면서, 그 반대편 쪽 힘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평균 나이 21.4세 한국 청춘들이 열심히 옷 사는 동안, ‘지구가 아프다, 마이 아프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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