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는 참 민감한 존재이다. 워낙 비싼 물건이기도 하고, 문화적 감성이 이만큼 집중적으로 투입된 존재도 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래서 그 사회가 어느 정도의 문화적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 나라에 투입된 차의 기술적 유형을 보면 금방 분석이 되기도 한다.
I40라는 자동차가 있다. 현대자동차에서 온 힘을 들여서 마케팅을 하는데, 한국에서만은 잘 안 팔린다. 짐차로 보이는 왜건 스타일의 문제일 수도 있고, 쏘나타와 그랜저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인 가격 정책의 문제라고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쨌든 유럽 주력 수출 모델이고, 세팅도 유럽차에 가깝게 만들어졌다. 내 기준으로는 썩 괜찮은 자동차이다.
이 차를 살펴보면서 두 가지 특이점을 느꼈다. 첫째는 동력계통의 차이인데, 국내에서는 오토 모델만 판다. 반면 수출형 차력에서는 수동이 기본이고, 오히려 오토인 경우에 옵션이 좀 빠진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다. 유럽의 경우는 오토미션과 같은 옵션을 달 바에는 아예 엔진을 한 급 위로 올리는 게 일반적이다. 자동차를 처음으로 산업화시킨 나라답게, 차량 그 자체의 기능을 즐기는 문화가 한 가지 개입한다. 물론 수동의 경우 연비가 10~15% 정도 더 높다. 부수적 효과이다. 한국만큼 짧은 시간 동안 온 국민이 수동 차량에서 자동 차량으로 옮겨간 사례는 볼 수가 없다. 생태적으로는 불리한 선택을 우리가 한 것이다.
물론 자동차 회사의 마케팅 전략도 조금은 개입한다. 여러 종류의 구동체계를 다느니, 차라리 오토 하나로 통일시키는 게 원가 절감이 된다. 아쉬운 것은, 자동차 회사에는 원가 절감일지는 몰라도 국가적으로 원가 절감은 아니라는 점이다. 더 많은 석유를 수입해야 하니 말이다. 생태적으로도 유리한 전략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수동 비중을 늘리면 아쉬운 대로 온실가스의 추가 감축이 가능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I40 (경향DB)
그러나 I40 차량의 진짜 문화적 코드는 좀 다른 데 있다. 모든 차량에는 주입구가 있다. 이 주입구가 왼쪽에 있는 경우, 오른쪽에 있는 경우가 있다. 왼쪽은 볼 것도 없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게 우선인 나라의 선택이다. 오른쪽에 있는 경우는 주유소가 없는 곳에서 운전자가 직접 주유할 일이 많은 나라의 선택이다. 차가 지나가지 않는 인도에서 안전하게 기름을 넣기 위해서는 오른쪽에 주입구가 있을 필요가 있다. 차에 기름을 싣고 다니면서 사막을 넘어가야 하는 밴이 발달한 미국에서 유래한 문화이다. I40는 왼쪽에 주입구가 있다. 기름을 싣고 다니다 주인이 직접 넣는 형태는 아니다. 그런데 많은 한국 차가 그렇듯이 차 안에서 주유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차 외부에서 주입구를 누르면 열리는 형태이다. 특이하다. 요 경우는, 주유원이 기름을 넣어줄 것이냐, 아니면 운전자가 셀프 주유하는 경우가 많으냐, 그 문화적 차이이다. 자신이 셀프 주유를 하는 경우, 주입구를 직접 누르고 여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서 I40가 유럽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토건을 통해 시멘트에 돈을 쓰다 보니 사람값이 우스워졌고, 주유소에서 벤츠 타는 운전자가 직접 기름을 넣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값이 비싼 나라에서, 벤츠 아니라 벤츠 할아버지를 몰고 오더라도 주유원이 알아서 넣어주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다. 그렇게 사람값이 비싸지면 나라 망하는가? 그런 나라들이 벤츠도 만들고 푸조도 만든다.
2014년, 시멘트 대신 사람값을 올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주유소에서 감히 다른 사람에게 기름을 넣으라고 하는 게 곤란한 시대가 되었으면 한다. 그게 생태경제의 출발점이다. 그래야 우리가 잘살게 된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지난 칼럼===== > 우석훈의 생태경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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