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득 불평등 연구에 입문한 지는 아직 일년 반밖에 안된다. 그동안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소득 분배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부정적 감정이 그야말로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 소득 분배가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그저 절반을 넘는 정도가 아니라 무려 80~90%에 달하는 것이다.
작년 여름 현대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는 ‘부의 대물림, 가난의 대물림이 어떤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90.7%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노력하면 계층상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이 80.9%였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이 신임 5급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작년 봄에 실시했던 의식조사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부의 분배는 공정하게 이뤄지는가?’라는 질문에 91.5%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계층 간의 이동이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도 70.1%였고, ‘우리 사회는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지 않는다’는 응답은 66.8%였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라 할 신임 사무관들마저 우리 사회에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룰 가능성을 극히 비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소득 분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다른 어떤 나라 국민들보다도 경제적 분배가 공평하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34개국 3만4500명을 대상으로 2007년 말 심층면접 조사를 했던 ‘BBC 월드 서비스 폴’이라는 자료를 보면 ‘과거 몇 년간의 경제발전의 편익과 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못했다’는 응답이 한국(86%)에서 가장 높게 나왔었다.
불평등의 심화는 소득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진다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국민들의 사회에 대한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다. 나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나 자신의 능력부족 때문으로 보고, 좀 더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자책했던 것이 개발연대 이후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들은 나 자신이 아닌 외부적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더구나 소득 불평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할 기회가 사라져버렸음을 깨달으면서, 남들보다 초라한 나의 경제적 성과가 나 자신의 능력부족이나 노력부족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제도적 구조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지 아닌지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불평등 문제를 놓고 보수냐, 진보냐를 따질 단계도 이미 지나갔다. 불평등 해소는 이제 진보만의 어젠다일 수 없다. ‘적정한 소득 분배’와 ‘기회의 균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국민들로부터, 특히 젊은층으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실을 더 이상 예사롭게 보아 넘겨서는 안된다. 이런 상황은 우리 사회가 조속한 시일 내에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의 이른바 ‘지도층의 피지도층과의 단절’에 해당한다고 본다. 지도층과 일반국민이 서로 딴 생각을 한다는 의미다. 일반국민과 지도층의 단절은 사회붕괴의 전조이고, 붕괴의 다음 단계는 해체이며, 해체된 사회는 소멸된다는 것이 인류 역사의 흥망성쇠 패턴이라고 토인비는 경고한다. 쉽게 말해 이러다간 망한다는 얘기다.
내년부터 과표가 5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이 38%에서 40%로 인상된다. 과표가 6억원인 사람은 5억원을 초과하는 1억원에 대해 200만원을 더 내야 한다. 이 정도의 세율인상은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한 수준이다. 그러나 많건 적건, 세금을 더 낸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다. 세금을 더 내야 하는 납세자들은 정부가 세금을 뜯어간다고 생각하기보다 사회의 안정과 결속력 유지를 위한 체제유지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정부도 이들이 더 내는 세금을 엉뚱한 데에 쓰지 말고 소득 불평등 완화에 사용해야 한다.
박종규 |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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