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규제, 개혁과 완화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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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시론]규제, 개혁과 완화는 다르다

by eKHonomy 2015. 2. 6.

필자는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살면서 과속차량이나 불법주차 등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의 운전은 불법행위의 연속이다. 규정속도보다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교통신호를 적당히 위반하기도 하고, 불법주차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아마 필자를 포함해 운전을 하는 한국인 대부분의 불편한 진실일 거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불편한 진실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다. 우리나라의 도로는 도로종류별로 지나치게 엄격할 정도로 획일적으로 정해진 최고제한속도를 지켜야 한다. 반면에 소위 선진국들의 도로는 도로종류뿐만 도심구간 여부, 도로의 휨 정도 등에 따라 매우 세밀하게 최고제한속도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으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경찰이 위반 차량을 단속한다. 주차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주차지역이 지정되어 있고, 불법주차를 하게 되면 어김없이 딱지를 떼이거나 견인된 차를 되찾아야 하는 막대한 비용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규정속도를 지키기가 참 어렵다. 예를 들어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남춘천 IC에서 나와 춘천시내로 들어오는 도로는 고속도로 개통 이후에 새로 확장된 왕복 4차선 도로이다. 시속 100㎞쯤 되어야 할 것 같은 이 넓고 한적한 도로의 최고제한속도는 시속 70㎞이다. 규정속도를 지키려 해도 쌩쌩 스쳐지나가는 차량을 보면 규정속도를 지키는 사람만 바보가 된 느낌이다. 그리고 거의 인적이 없는 곳에 만들어 둔 교통신호등은 사람이 지나지 않더라도 규칙적으로 빨간불이 들어오는데 이때 나 혼자 서있기라도 하면 뒤차가 하이빔을 켜며 빨리 가기를 재촉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속도제한을 넘기고 빨간 신호등을 무시하고 지나더라도 단속하는 경관은 거의 볼 수 없다. 게다가 몇 ㎞ 전방에 속도위반 무인단속카메라가 있다는 식으로 친절한 안내간판이 설치되어 있으니 평소에 법을 지키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진다. 경제학 용어로 얘기하면 법규를 무시해서 얻는 기대이익이 단속에 걸려 지불하는 기회비용보다 크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지난 해 4월 10일 열린 한국남동발전의 중소기업 규제개혁 토론회 (출처 : 경향DB)


좀 장황하게 선진국과 한국의 교통법규 차이를 설명한 것은 경제규제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필요한 곳에 규제를 만들고 일단 만든 규제는 철저히 집행해 나간다. 우리나라는 필요하지 않은 곳에 과도한 규제를 하거나 정작 필요한 곳엔 규제가 허술하다. 그리고 규제를 만들어도 집행은 그야말로 감독관청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잠재적 범죄행위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이 때문에 감독관청과의 어두운 거래가 생길 소지가 높은 것이다. 마치 운전하며 불합리한 교통법규를 어기게 되고 이 때문에 단속경찰과의 어두운 거래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내수부진과 저성장의 근본원인으로 작용해온 고질적인 규제를 개혁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긴 한데 혹시 규제개혁을 규제완화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규제도 교통법규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곳의 규제는 강화하고 불필요한 곳의 규제는 완화해서 “합리적인”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규제가 만들어지면 철저히 집행해서 경제 참가자들(기업, 노동자, 소비자 등)이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규제를 따르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선진경제로의 개혁이다.


이현훈 |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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