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일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미래세대를 위해 보전해야 한다”며 그린벨트 해제 여부를 놓고 일주일 넘게 이어진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국방부 소유의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를 곧바로 언급하면서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이곳 역시 그린벨트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 부지가 그린벨트인 줄 모른 채 20일 ‘그린벨트 보전’을 발표한 것인가.
설익은 주택 개발계획으로 수많은 생물들의 생존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존을 말로만 내세우고, 행동으론 다른 생물들의 생존을 무시하고 있다. 사람은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연 내의 모든 생명체와 연결되어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고 있다. 그린벨트의 자연성 가치를 살펴보자.
첫째로 자연만이 IT시대의 부작용을 치유할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책에 등장한 내용이다. IT문명의 부작용을 다른 문명이 해독하지 못하고, 자연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린벨트 자연은 수많은 생물들이 모여 살기에 사람들의 주택지 개발로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가 개발시대에 도시 간 연담화 방지를 위해 설정한 곳이 그린벨트이다. 개발을 위해 유보된 지역이 아니다. 인간과 다른 생물의 공생을 보장한 땅이다.
둘째, 그린벨트 지역 내 자연은 도시 내 바람길 원천지역이다. 서울은 도심 과밀화로 도심의 온도가 계속 상승되어 초속 2m 이하의 대기정체가 잦아지고 있다. 미세먼지 정체가 반복되어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 수밖에 없다. 서울 바람길계획은 도심외곽에서 발생한 찬 공기가 도심으로 들어와 오염된 공기를 한강으로 밀어내기 위한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서울 외곽의 자연과 도심의 녹지축이 연결되어야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시는 분지도시로 바람길 계획을 1960년대에 수립, 서측 녹지지역을 통과하는 고속도로를 지하화하여 청정 공기가 도심으로 흘러들게 하였다. 도심 철도역도 지하화하고 지상부에 30% 이상의 녹지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울러 오염된 공기는 동쪽 네카강으로 흘러 나갈 수 있게 바람길을 보완하고 있다.
분지도시에서 도심 대기오염물질을 외곽으로 빠지게 하기 위해서는 바람길도 중요하지만, 찬바람이 생성될 수 있는 자연도 중요하다. 여기에서 생성된 찬 공기가 도심으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린벨트는 찬 공기의 생성장소로서, 이곳을 파괴하면 서울 도심의 대기오염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가 힘들어진다. 날이 갈수록 서울은 대기오염물질량이 계속 증가할 것이다. 이런 때에 청정공기의 발생원인 그린벨트를 파괴하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그린벨트 개발은 거대한 물쓰레기장을 만들게 한다.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 보통 지하 3~4층까지 파내고 거대한 지하주차장을 조성한다. 이 주차장의 하부와 상부를 콘크리트로 시공한다. 지하수맥은 더 내려가고, 상부에서 빗물의 지하이동이 불가능해진다. 비가 오면 모두 물쓰레기가 되어 배수구로 흘러 들어간다. 물이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라면서 모든 빗물을 물쓰레기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또다시 사막과 물쓰레기장을 만들려는 것인가.
넷째, 그린벨트 내 자연지역은 뭇 생명체의 보금자리이다. 어느 한 생명체도 자연에서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 햇빛을 활용하여 영양물질을 만들어 내는 식물로부터 토양미생물, 곤충, 조류, 포유동물들은 에너지를 일방적으로 공급받아 살아간다. 생태계에서 벗어나 인간은 사회를 이뤘지만, 식량은 재배 식물의 생산역량을 높이기 힘든 데도 과잉소비를 계속하고 있다. 단 1g의 탄수화물을 인간들은 자체 생산하지도 못하고 각종 쓰레기만을 만들어 내는 소비자 역할만 하고 있다.
인간 이외 생물들은 사람이 없어도 살아 갈 수 있지만, 사람은 다른 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이제 2050년이면 지구파멸시대로 접어든다는데 어찌할 것인가.
인간이 사라진 도시는 200년만 지나면 스스로 자연복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인간은 다른 생물들의 친구가 아니라 필요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 이제 철이 들라는 다른 생물들의 충고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위기시대에 또 대규모 생물서식처를 파괴하여 사람들만의 생활장소로 바꾸려 하고 있다. 이제 겸손해지자. 우리의 친구이자, 의사이자, 선생님인 자연을 보호하여 인간도 자연질서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경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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