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어디인지, 금융정책과의 관계는 어떠한지, 보유세·취득세·양도세 등 어느 세금을 올리는 것이 효과적인지,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종합적 대책이 무엇인지, 해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분노, 실망, 절망, 배신감, 후회 같은 것을 말할 자격은 있을 것이다.
3년 전, 집 근처 유치원 배정에서 모두 떨어진 후 이사 준비를 했다. 지하철역 종점에서 2곳 떨어진 변두리다. 전세를 알아보러 갔는데, 매매가의 70% 정도였다. 부동산 사장님이 권했다. “이 돈으로 전세를 왜 들어가요? 조금만 대출받으면 살 수 있는데?” “사장님, 새 정부가 집값 잡는다고 했잖아요. 이제 대출받아서 집 사는 건 위험해요.”
그때 내가 얼마나 당당하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면 분노보다 창피한 생각이 먼저 든다. 어쨌거나 2년 뒤 전세 연장 때문에 부동산중개소를 다시 방문했을 때, 나는 곧 우리 가족이 멀리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잘못이었다.
앞에서 밝혔듯이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새로 발표한 대책이 효과가 없으리라는 것은 안다. 명백한 증거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들이 집을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책이 정말 효과적이라면 팔지 말래도 팔 것인데, 팔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억지로 팔게 한다. 억지로 팔게 한들 무슨 소용이랴. 집값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데.
전에는 내가 비웃음을 샀지만, 이번에는 내가 비웃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 대책을 수립한 사람들은 팔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세상에는 ‘모순’이나 ‘위선’, ‘사기’라는 말이 존재한다.
정부는 대책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나 무슨 대책을 발표해도 결국은 오를 것이다.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늑대가 나타났다고 23번째 이야기를 하는 양치기를 어떻게 믿으라는 것인가? 선한 의지를 가진 정부를 못 믿는 내가 나쁜 사람인가? 정부는 대책에 앞서 신뢰를 회복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대책이 아니라 해명과 사과가 우선이다. 무엇을 잘못 예측했는지, 불가항력의 요인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앞선 22번의 대책은 잘했다는 것인지 못했다는 것인지, 그래서 아무도 책임이 없다는 것인지, 정부는 말이 없다. 지금으로서는 아무 잘못이 없어서 읍참마속을 할 사람도 없다는 것이 입장인 듯싶다. 아, 역시 내 잘못이었다.
실수요와 투자수요와 투기수요를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모든 수요가 다 투기수요나 다름없다. 이게 왜 구분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세금은 눈이 멀어야 한다. 계획적으로 얻은 이득과 우연히 얻은 이득을 구분할 이유가 없다. ‘나는 투기도 안 하고 그냥 한 곳에 계속 살았는데, 세금 내기 억울해요.’ 억울하긴 뭐가 억울한가. 투기해서 세금 내는 게 아니고, 집값이 올라서 세금 내는 것이다. 세금은 투기에만 매긴다는 황당한 관념이 임대사업자 면세라는 황당한 정책을 낳았다.
‘환매해서 실현되지 않은 이익에 어떻게 세금을 매기느냐?’고 할지 모른다. 이론상으론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되묻고 싶다. ‘수십억 집에 살면서 소득이 없어서 세금 못내 쩔쩔매는 사람, 어디에 얼마나 있습니까? 세금 내야 하니까 집값이 안 오르거나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 있습니까?’
자기 돈으로 사든, 대출받아 사든, 그게 구분이 왜 필요한가. 집값 올라봐야 불로소득이라 거의 다 내놓게만 되어 있다면,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실수요자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게 아니고 그저 집값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똘똘한 한 채’라니. 집이 사람도 아니고 똘똘하긴 뭐가 똘똘한가. 그냥 한 채로 하는 투기는 보장해준다는 말 아닌가? 그리고 쫌, 임대아파트는 무조건 역세권, 숲세권, 학세권, 한강 뷰로 짓자. 공공의 자원이고 공공이 투자했으면 공공이 이득을 보는 게 맞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책이 아니라 원칙이다. 부동산이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되게 할 것인지 아닌지 정해 달라. 집이 투자의 수단인지 주거의 공간인지 원칙을 정해 달라. 집이 자산인 세대가 수립하는 정책 때문에, 집을 주거로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집을 사야 할 판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사지 않으면 한없이 밀려날 판이다. 한 채든 백 채든 ‘부동산으로는 돈 벌 수 없다’는 원칙, 그것만 지켜주면 좋겠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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