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소를 잃어버린 주인 꼴이다. 그것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지난여름 고된 노동에 힘이 빠져 버리자, 도살장에 넘겨 부속 따로 살코기 따로 헐값에 넘겨버린 주인 말이다. 막상 그렇게 하고 나니, 뭔가 아쉽고 손해 본 느낌은 드나 보다. 뒤늦게 외양간에 남은 비루먹은 또 한 마리한테 사료를 잘 줘볼까, 아직 덜 큰 송아지들 두어 마리 서둘러 잘 키워볼까,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나긴 겨울 동안 사료값만 들 생각을 하니 이 또한 어려운 집안 살림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 전전긍긍이다. 안 그런 척하면서, 슬그머니 남은 소 한 마리를 사들일 생각이 있는 옆집 주인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한진해운 정리 후 우리 해운산업의 이야기이다.
두 가지만 생각하자. 내년 봄 농사철에 우리 논과 밭은 누가 갈 것인가? 넉넉하지는 않지만, 갈아야 할 논과 밭이 적지는 않다. 비옥한 논이 아니라서 남의 소한테 맡기고 돈까지 줘서는 이문이 남을지 장담할 수 없다. 산비탈에 널려 있는 밭이라서 지형에 익숙한 우리 소 아니면 품도 많이 든다. 외양간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10여년간 없는 돈 들여서 부지런히 넓히고 나름 편리한 시설을 갖춰 놓았다. 우리 소도 없는 외양간, 다른 집에 임대라도 줄 수 있는가? 동네에 널려 있는 것이 그만한 외양간인데 말이다.
우리나라 수출입물량의 거의 절반이 우리 해운기업에 의해 수송되어 온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제 한진해운이 해체되었으니, 현대상선과 다른 중소 선사들이 그것을 완전하게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 수출입화물이 우리 선사를 이용한 것은 투명한 가격경쟁 이외에도 국적선사가 갖는 다양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입물량에 맞게 노선과 시기를 편리하게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화물 수출입에 필요한 각종 번거로운 문서작업에 언어와 문화장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수출입기업들은 시장가격 이외의 경제적 이득을 우리 선사로부터 누리고 있었고, 그것이 해외시장에서 우리 수출입화물의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이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해운산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 전체의 문제다. 이제 우리 자체의 선박펀드를 만들어 국적 해운사의 육성과 조선업의 부활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건전한 시장경쟁구조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운시장 자체가 완전한 시장경쟁체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남아 있는 현대상선마저 은근히 인수·합병하고자 하는 그 글로벌 해운기업이 이미 해운시장을 이 꼴로 만든 독과점업체이고, 두 개가 하나 된 중국 해운사도 독과점이다. 남아 있는 것은 상황이 끝난 뒤 솟아오를 해운시장의 독점운임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산항, 광양항, 인천항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국적 해운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3대 항만이 지금처럼 운영되기는 힘들다. 국적선사이니까 각각의 항만을 기반으로 하는 노선을 만들 때, 단기적인 이윤만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아니다. 부산항 물량의 거의 절반이 환적화물이다. 최종 목적지가 북미, 유럽, 중국인데 부산항에 우리 국적기업 중심의 노선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옮겨 실었을 뿐이다. 만약 이 노선이 우리 것이 아니라면 굳이 부산에서 옮겨 실을 이유가 없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1995년 지진 발생 후 갑자기 글로벌 무역항 랭킹에서 사라진 고베항의 경우가 우리의 사례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부산항을 대신할 중국, 대만, 일본의 수많은 항구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여년간 많은 투자를 했던 동아시아 물류거점이라는 지금은 빛바랜 국가전략도 이제까지는 부산항과 인천공항의 성과로 달성된 듯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이제 그 물리적 투자의 기회비용과 심리적 보상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김태승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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