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에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자연환경 파괴가 심각해질 때 이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경제학자에게 물었다면 간단명료한 해법이 나올 것이다. 입장료를 크게 올리는 거다. 입장료(가격)가 오르면 관광객(수요)이 줄면서 자연 훼손이 최소화될 수 있다. 도심의 심각한 교통난을 해소하는 손쉬운 경제학적 방법도 비싼 통행료를 매기는 거다.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가격(통행료)이 상승하면 수요(교통량)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간단명료하고 손쉬운 해결책이 그대로 정책으로 실현되진 않는다. 정책 당국자들이 수요·공급의 법칙을 몰라서가 아니다. 국립공원 입장료나 통행료를 크게 올리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서다. 돈 많은 사람들은 한가로운 국립공원의 새소리나 뻥뻥 뚫린 도심 대로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공원이나 도심 이용 자체가 힘들어지는 것 등등. 그렇게 나라는 수요·공급 곡선 같은 경제이론만으로 운영될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이 경제학자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정부 들어 최대의 논쟁거리가 된 최저임금 문제도 경제이론만으로 보면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현재 전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인 신고전주의) 경제이론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제도 자체만으로 실업을 유발한다. 이 이론은 노동시장도 상품시장과 마찬가지라고 본다. 최저임금제로 인해 노동의 수요·공급곡선이 만나는 지점(균형임금) 이상으로 임금(가격)이 오르면 수요(기업들의 고용)는 줄고 공급(사람들의 노동시장 참여)은 늘어 그 차이만큼 실업이 발생한다는 거다.
얼마 전 지난해 4분기 소득격차가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진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나오자 또다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노동제로 인한 참사’라는 목소리들이 높아졌다.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사용자들이 고용을 줄여 저소득층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소득격차가 커졌다는 논리다. 경제이론을 그대로 대입하면 나올 수 있는 결론이다.
하지만 최저임금과 고용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본산인 미국에서조차 경제이론에 맞는 결론들이 나오지 않는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최저임금이 직접 영향을 주는 10대 미숙련 노동자들의 고용에는 악영향을 주지만 그 외 다른 집단에는 영향이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는 결론이 다수설이다. 기업들이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정적 고용효과를 생산성 증대, 노동강도와 이윤 조정 등을 통해 상쇄한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발표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친 영향을 실증·계량적으로 분석한 학술 논문의 대부분이 유의미한 영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고 있다. 집에 책이 많은 아이들이 집에 책이 전혀 없는 아이들보다 학교 성적이 더 좋은 통계 결과(상관관계)가 나온다 해서 집에 책이 많다고 반드시 아이의 학교 성적이 좋아진다는 결론(인과관계)을 낼 수는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최근 고용과 소득 등 경제지표가 크게 악화된 것은 분명하다. 일자리 정부와 포용적 국가를 내세운 현 정부가 통렬하게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오로지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 탓으로만 몰아간다면 우리 경제의 진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놓칠 수 있다. 기존 대기업 중심의 제조업 경쟁력 추락, 사회 고령화로 인한 저소득 노인 가구의 급증, 온라인 거래 증가로 인한 중소 자영업의 몰락, 로봇 확산 등 자동화 진전에 따른 고용 수요의 감소 등 우리 경제가 풀어야 할 보다 핵심적이고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최저임금을 탓한다고 해결될 것들이 아니다.
한국도 선진국 문턱이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에 들어섰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실감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에 시달리면서도 삶을 지탱하기 버거운 수준의 소득을 올리는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잃었을 때, 병이 들었을 때의 사회안전망도 미흡하다. 제대로 된 소득 3만달러 국가가 되려면 지금보다 임금이 올라가야 하고, 노동시간은 줄어야 하고, 복지는 늘어야 한다. 이는 경제학적 논리만으로 재단할 수 없다. 경제성장을 위한 당장의 효율성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질과 사회의 안정을 높이는 효과를 봐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들은 고용을 악화시키고 소득격차를 확대하며 밑 빠진 독에 혈세를 퍼주는 것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언제까지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의존한 성장을 바라야만 하는 걸까. 국민소득이 10만달러쯤 되면 이런 논란이 없어질까. 과연.
<김준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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