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개인투자자)는 이번에도 쓴맛을 봤다. 최근 증시가 급락하자 더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감에 벌벌 떨며 들고 있던 주식을 내던졌다. 이내 급반등하자 왜 팔았을까, 한숨을 내쉰다.
주식시장은 수급에 따라 움직인다. 주식 사겠다는 수요가 많으면 상승하고, 그 반대면 하락한다. 수급 결정에는 양의 많고 적음보다 투자자의 심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지난주 크게 요동친 증시를 보면 전통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크게 벗어난 것 같다. 과거 경제학 이론은 인간을 ‘합리적 판단을 하는 존재’라고 가정했지만 최근 행동경제학에서는 그 가정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합리적 판단을 못하는 존재라고 해도 그 정도가 심했다. 6월 중순 1900 안팎에 머물던 코스피지수는 1800이 무너져 1780선까지 주저앉았다. 이후 3거래일간 반등해 1860선을 회복했다.
(경향DB)
증시를 롤러코스터에 태운 요인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였다. 경기회복을 위해 시중에 돈을 대거 풀었는데,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자 그 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밝힌 것이다. 양적완화로 주식 살 돈이 많아져 너도나도 매수에 나섰는데, 돈줄을 죈다고 하니 수요가 줄어들 게 뻔해졌다. 게다가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금리가 올라가 주식에 투자했던 자금이 보다 수익이 높은 투자처를 좇아 미국 채권으로 옮겨가게 된다.
며칠 새 코스피지수가 100포인트 넘게 폭락했다. 폭락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일본과 중국 증시도 동반 폭락했다. 증시 투자자의 심리가 하락 쪽으로 급격히 쏠렸기 때문이다. 배에 물이 스며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몇몇 승객이 위험하다며 물에 뛰어들자, 배가 침몰할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다른 승객들까지 가세해 마구 뛰어든 형국이다.
승객들이 대거 배에서 탈출한 직후 상황이 급변했다. 미국의 1분기 성장률이 예상보다 안 좋게 나온 것이다. 이번에는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전망이 대두되면서 증시가 급등했다.
증시가 폭락했다가 폭등하는 과정을 보면 마치 투자자들이 이성을 상실한 것 같다. 경제지표가 호전된 것으로 나오자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기대치를 밑돌자 상승하는 기현상이 빚어졌다. 예상한 것보다 경기가 나쁘니 미국이 돈줄을 죄는 시기를 더 늦출 것이라는 안도감이 작용한 탓이다. 경제가 좋으면 기업실적이 개선돼 주가가 상승하고, 침체하면 주가가 하락하는 게 상식이지만 정반대였다.
이성이 실종된 행태를 보이는 것은 비단 증시만이 아니다.
“저는 어떻게든 형님 잘 모셔서 마음에 들어볼까 노심초사 중이었는데 이런 소문을 들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형님께서 무엇이든 시키시는 대로 할 생각이오니 혹시 오해가 있으시면 꼭 풀어주시고 저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김무성 문자 (경향DB)
조직폭력배 두목에게 바치는 충성 맹세의 글이 아니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같은 당 김무성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란다. 이후 김재원 의원이 김무성 의원을 찾아가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김무성 의원은 김재원 의원의 등을 토닥이는 장면이 목격됐다. 김무성 의원의 ‘북방한계선(NLL) 회의록 발언’ 유출자로 의심받은 김재원 의원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앞서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해 ‘국가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 생각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회의록 공개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국면전환용 카드로 꺼낸 것이다. 대통령기록물은 15년간 공개해서는 안되며, 공개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 간 신뢰가 깨져 외교활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비이성을 넘어 광기를 부리고 있는 것으로 비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도 ‘집단으로 이성을 상실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 결과 탄핵 역풍에 직면한 한나라당은 17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지금도 대학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대학생과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벌이는 등 공개 역풍이 만만찮다.
이성을 잃은 건 같아도 증시와 정치는 다르다. 증시에서는 일부 투자자의 손해로 끝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장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등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민생 현안이 뒤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며칠 전 기획재정부 차관은 “일자리 만들고 경기 회복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타이밍인데, 국회에서 지연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정치 자체가 비합리적인지도 모르겠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비합리적인 존재로 치부한다. 그렇다면 비합리적인 인간이 투표를 통해 뽑은 정치인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까?
안호기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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