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플래그십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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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여적]플래그십 마케팅

by eKHonomy 2016. 3. 1.

신제품을 소개하는 자리에는 ‘플래그십(flag-ship)’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말로는 함대에서 지휘관의 기를 단 배를 일컫는 기함(旗艦)이다. 대장 기를 꽂고 있으니 대표 상품이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세단은 과거 그랜저였다. 이후 다이너스티, 에쿠스를 거쳐 지금은 제네시스 EQ900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은 갤럭시 S7과 S7엣지이다. 갤럭시는 A, J, 그랜드, 라운드 등이 있지만 S를 집중적으로 홍보한다. 최고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플래그십 마케팅은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상품을 내세우는 판촉 기법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맥주시장은 동양맥주(옛 OB맥주)가 월등한 1위였다. 만년 2위였던 조선맥주는 93년 출시한 하이트가 큰 인기를 끌며 OB맥주 판매량을 뛰어넘자 98년 회사명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바꿨다. 플래그십 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기능에 큰 차이가 없어도 과시욕이나 허영심 때문에 높은 가격의 상품을 기꺼이 구매한다는 ‘베블런 효과’라는 게 있다. 기업 투자심리와 소비자심리가 계속 하락해 불황이 깊어지고 있지만 플래그십에 대한 관심은 식지 않는다. 베블런 효과와 비슷하다. 플래그십은 가격 대비 성능비를 따지지 않기에 공통적으로 가격이 높다. EQ900 최고 사양은 1억원을 훌쩍 넘고, S7엣지는 90만원대 후반으로 알려졌다. 플래그십 유모차는 300만원에 육박하고, 자전거 출근으로 화제가 됐던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의 자전거는 1000만원이 넘는 기함급이다.

플래그십 마케팅은 소비자의 속물 근성을 파고든다. 가격이 비싸도 지불능력이 있는 부자라면 문제가 없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30만원이었다. 이에 ‘330만원 받아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열 받는다. 평균으로 따지지 말라’는 댓글이 잇따랐다.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사람은 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가설을 세우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플래그십 마케팅이 가뜩이나 비합리적인 선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안호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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