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에 관한 거시경제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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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의 경제새판짜기

연금개혁에 관한 거시경제학적 고찰

by eKHonomy 2018. 8. 31.

필자는 국민연금이 매년 큰 흑자를 내면서 적립금이 하염없이 쌓여가는 게 걱정이다. 미래를 위한다면서 총수요를 위축시키고 현재의 삶의 질은 물론 미래를 위한 투자까지 악영향을 받을까 염려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연금을 더 내고 더 늦게 받아야 한다고, 따라서 지금부터 흑자를 더 많이 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시점이 2060년에서 2057년으로 앞당겨졌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성을 위해 고통스러운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은 부유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돈을 쌓아놓는 게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쌓아놓은 돈은 쓰고 나면 끝이지만, 생산성이 올라가면 매년 버는 돈이 많아지니 이게 진짜 부자라는 의미다. 당시 돈은 곧 금이었다. 스미스는 무역흑자를 통해 금을 벌어들여야 나라가 부강해진다는 중상주의 혹은 중금주의 사조를 비판하고, 자유로운 시장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생산성 증가는 분업에서 오고 분업은 시장의 확대를 기반으로 발달한다는 논리였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물론 쌓아놓은 돈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다. 하지만 돈을 쌓아놓기 위해 저축을 늘리고 지출을 줄여야 한다. 이는 자칫 미래를 더 어둡게 할 수도 있다. 지출 중에는 투자지출과 소비지출이 있다. 먼저 투자지출을 줄이는 경우를 보자. 여기서 투자란 교육, 연구개발, 설비투자 등 미래의 소득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일컫는 경제학적 의미의 투자다. 일반인들이 흔히 투자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저축의 한 형태인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을 매입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지금 저축을 늘리고 투자지출을 줄이면, 미래에 쌓아놓은 돈은 늘어나지만 생산성은 낮아진다.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

 

저축을 늘리기 위해 소비지출을 줄이는 경우에는 미래의 생산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쌓아놓은 돈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소비지출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현재 삶의 질이 떨어지고, 만약 너나없이 소비지출을 줄이면 총수요가 위축돼 경기가 나빠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소득이 줄고, 심지어 경기악화의 영향으로 투자도 줄어 미래의 생산성까지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케인스가 말하는 ‘절약의 역설’이다. 개인은 절약을 하고 저축을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지만, 모두가 부자가 되겠다고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면 오히려 모두가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총수요는 소비지출 더하기 투자지출이기 때문에, 총수요 위축에 의한 경기악화는 투자지출을 줄이는 경우에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저축을 늘리려면 투자든 소비든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이는 미래의 생산성이나 현재의 삶의 질을 일정하게 희생하는 일이다. 나아가 총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에는 수요위축에 의한 경기악화를 초래해 그 희생을 가중시킨다. 경제의 조정과정이 끝나고 거시경제적 균형이 이뤄지면 저축과 투자는 같아지기 때문에, 소비를 줄여도 소득이 감소하여 결과적으로 저축은 늘지도 않으며 투자를 줄이면 저축까지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만약 총수요가 충분하고 경기가 좋을 때라면 얘기가 달라져서 저축을 늘리면 투자가 따라서 늘어나게 된다.)

 

우리 국민은 국민연금제도를 통해 강제로 노후 대비를 위한 저축을 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국민연금은 매년 엄청난 흑자를 기록 중이다. 아직까지 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재 635조원의 누적흑자가 적립돼 있고, 2040년대에는 2500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의 흑자 덕분에 통합재정수지도 상당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통합재정수지 흑자는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은 정부가 수입보다 지출을 많이 하는 적자재정을 통해 총수요에 도움을 주는데, 우리의 경우 거꾸로다. 우리 정부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라는 개념을 만들어 매년 적자재정 운운하고 있지만, 거시경제적으로 정부가 총수요를 위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저축을 늘려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저축을 늘리면 ‘절약의 역설’ 희생자가 된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는 마치 한 개인처럼 연금의 재정안정성이라는 것만 고려하고 있지만, 국민연금은 결코 개인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경제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경제적 존재다. 머나먼 미래의 기금 고갈을 걱정하기 전에 현재 발생하고 있는 막대한 흑자를 걱정해야 한다.

 

기금 고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현재 전망되는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가 지속되는 한 기금 고갈을 막기는 어차피 어려울진대, 불확실한 가정에 의존해 고갈 시점을 조금 늦추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다고 호들갑을 떨어야 하나? 대다수 국가들이 적립된 기금이 아닌 매년 부과하는 보험료 수입에서 연금을 지급한다. 우리도 적립식이 아닌 부과식으로 가야 하고 갈 수밖에 없다. 점진적인 이행을 하면서 점차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도 조정을 해나가면 된다.

 

부과식으로 전환할 때 보험료율이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한데, 얼마나 올라야 하는가는 결국 미래의 경제성장률에 달려 있다. 이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변수는 인구성장률과 노동생산성 증가율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을 한없이 쌓기보다 출산율 제고와 미래를 위한 투자에 이를 활용하는 방도를 찾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재정안정성의 이름으로,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출산율 제고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저해한다면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금 고갈 운운하며 국민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국가에 대한 신뢰도, 소비심리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연금 국가지급 명문화를 추진키로 한 것이다. 기금 고갈 논란으로 불거진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당연한 국가 책임을 분명히 하는 일인데, 이를 정쟁의 소재로 삼는 일은 없어야겠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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