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제부총리도 한 강연에서 “ ‘고성장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고성장 시대의 종언을 인정한 셈이다. 경제학 박사인 부총리가 이제야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크게 이상하다. 경제학과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어느 정도 지식만 있으면 한국이 예전과 같은 고성장은 불가능하고 저성장 시대에 이미 들어갔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 국가의 잠재적 성장 능력은 대략 노동인구와 생산성 증가율의 합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지식이다. 한국은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노동인구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생산성도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단계에 이르면 단기간에 크게 올리기 어렵다. 즉, 한국 경제는 오래전부터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정부 7·4·7공약의 허망한 실패일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7·4·7공약의 핵심인 7%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 인하와 무리한 고환율 정책, 지속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 4대강 사업, 법인세 인하 등의 정책을 무모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임기 2008~2012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 정도로 한국 경제의 잠재적 성장 능력에도 미치지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고환율 정책으로 인해 임기 5년 동안 겨우 1000달러 정도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경제만이라도 잘했어야 하는 정부의 성적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소비·투자 확대 등 유효수요 창출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_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정책도 지금까지는 부동산 띄우기, 금리 인하, 적자재정 지속 등 이명박 정부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3%대로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서민과 중산층의 경제적 삶은 전셋값 폭등, 담뱃값 인상, 소득세 인상 등으로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앞으로도 저성장 시대는 계속될 것이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야 국민의 생활이 좋아지고, 성장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수 있을까가 중요한 문제이다. 부동산 띄우기와 금리 인하, 단순한 재정 확대와 같이 쉬운 정책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지난 7년간 잘 보여줬다.
첫째는 경제정책의 목표를 성장보다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 자체로 전환하는 것이다. 엔지니어링 정밀기계 등 숙련 인력이 많이 필요한 산업의 육성, 새로운 직업의 출현을 막는 법과 제도의 개선,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에 대한 우대 등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그리고 일자리를 지키는 정책도 중요하다.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감독당국이 나서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지원하는 정책은 아주 나쁘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통합하면 좋은 일자리 2000~3000개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양 은행의 조기 통합은 하나금융지주의 주주와 경영층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나라 전체로는 좋은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나쁜 정책이다.
둘째는 시간이 걸리고 어렵지만 한국 경제의 잠재적 성장 능력을 높이는 정책이다. 노동인구와 생산성도 좋은 정책을 펴면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 먼저 노동인구를 늘리기 위해서는 출산율을 높여야겠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따라서 직업 간 과다한 보상격차의 축소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줄일 수 있는 단기적 정책도 찾아야 한다. 다음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다. 기업의 생산기술뿐 아니라 경제·사회 시스템의 효율성도 생산성의 구성요소이기 때문에 다양하다. 뛰어난 인재가 의·치대보다 이공계를 더 많이 지원해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경쟁력이 높아진다. 독일과 같이 숙련기능공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대우가 좋아져야 뛰어난 생산기술 노하우가 축적된다. 조세제도와 관료제도 개혁도 경제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금융개혁을 통해 창업자나 영세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것과 집세를 안정시켜 고비용 구조를 완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생산성 향상 정책이다.
이러한 정책은 좋은 약이 입에 쓰듯, 대부분 반대가 많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가 3년 정도 남았다. 이 많은 정책 중에서 한두 개라도 제대로 추진한다면 임기 말쯤에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경제기초를 잘 다져 놓았다는 평가는 받을 것이다. 남은 3년이라는 시간이 국민에게 너무 아깝다.
정대영 | 송현경제연구소장
'경제와 세상 > 정대영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연금, 제도 밖에 답이 있다 (0) | 2015.05.13 |
---|---|
가까이 다가온 디플레이션 (0) | 2015.04.15 |
조세제도,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 (0) | 2015.02.11 |
한국 경제, 위기는 어디서 올까? (0) | 2015.01.07 |
‘FTA 전성시대’를 맞는 우리의 자세 (0) | 2014.12.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