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에서]벼랑에 선 제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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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정동에서]벼랑에 선 제조업

by eKHonomy 2016. 2. 3.

또 낙제점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성적이 연달아 어둡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왔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의 지난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가동률은 74.2%로 외환위기 때인 67.6% 이후 가장 낮다. 벼랑 위에 선 제조업의 현주소다.

변변한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제조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물건을 만들고 해외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축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주요 산업 대부분이 불안하다. 조선업은 난파선과 같다.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 등은 수조원씩의 손실로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흥청거리던 거제의 도심 거리는 인적이 줄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경기부진에 매출목표를 전년보다 줄였으며 삼성전자는 수익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그런데 앞으로가 더욱 잿빛이다. 우려했던 ‘더블 딥’과 엘(L)자형 경기침체 전망이 현실화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저성장시대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폭락한 유가와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침체에서 비롯됐다.

저유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고 있다. 미국의 셰일가스혁명은 산유국들을 빈털터리로 만들고 있다. 채굴 비용이 대폭 줄어 값싼 원유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산유국들은 파산 상태로 치닫고 있다. 유가는 반년 만에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산유국들은 졸지에 금수저에서 흙수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의 주머니에 먼지만 날리면서 산유국들을 상대로 했던 플랜트 및 유조선 건조 사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2016년 '기계산업군,소재산업군,IT제조업군,음식료' 에 대한 '수출,생산,내수,수입' 기상도._경향DB

중국의 침체도 악재다. 세계경제의 3분의 1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은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이었다. 그러나 엔진이 식으면서 시장은 얼어붙었다. 7%의 성장을 구가했던 ‘바오치(保七) 시대’가 25년 만에 종언을 고했다. 고성장의 시대는 간 것이다. ‘세계의 지갑’이던 중국의 부진을 대체할 곳은 보이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전격적으로 금리를 내렸다. 일본은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열었다. 일본 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는 우리나라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면초가에 직면한 제조업 주변에는 비관론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는 과도하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가운데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31.1%에 이르며 성장기여율도 40%를 초과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1달러를 투자했을 때 산업별 투자효과를 비교하면 금융업이 0.7달러인 데 반해 제조업은 1.4달러에 달한다. 일본과 독일이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는 바탕에는 탄탄한 제조업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수입하기 위해 제조업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필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고 금융 산업 의존도가 높은 미국과 영국 등의 피해가 더 컸다. 서비스업 중심의 내수성장론이 힘을 받고 있으나 이는 성장동력이라기보다는 ‘고용의 피난처’에 머물고 있다.

제조업은 앞으로도 유효하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지난 30여년간 추진해온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부터 살펴봐야 한다. 기존 성장 모델은 더 이상 적용하기 어렵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노동인력은 부족해지고 임금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과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외환위기 이후 멈춰진 산업구조 개편작업에 나서고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에 대비한 고도화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대기업 중심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키워야 한다. 정부 지원을 받아 연명하는 ‘우물 안 개구리형’ 기업은 국가경제에 짐일 뿐이다. 독일이 어려움 속에서도 외풍을 덜 타는 것은 탄탄한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의 허리를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고 실력을 갖춘 강소기업들이다. 대기업 또는 일부 산업 중심에 편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골고루 성장하는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

절벽의 시대다. 소비도, 수출도, 고용도 모두 고꾸라졌다. 국가들은 저마다 살길을 찾아 각자도생에 나섰다. 기존 방식으로는 제조업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근본적인 수술로 기초체력을 보강하고 혁신에 나서야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패러다임 전환의 물결을 타야 한다.


박종성 |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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