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은 ‘집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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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

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은 ‘집토끼’

by eKHonomy 2019. 4. 24.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주요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최근 제조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해온 지역경제 또한 함께 둔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지역경제는 저출산, 고령화 등의 인구구조 문제, 기후변화 등의 환경 문제 등 새로운 당면과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추진하고 있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들은 각 지역을 와해성 혁신을 바탕으로 한 신성장 분야의 새로운 제조 거점기지 정도로만 치부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진공관을 기술적 배경이 완전히 다른 트랜지스터가 대체한 것처럼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기존 산업을 와해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와해성 기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는 기존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존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을 꼽을 수 있다. 


현재 다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는 지역별 경제적 편차를 줄이기 위해 장소기반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국가 대부분은 지역경제 활성화의 대안을 신산업 내지 외부 인력 중점의 와해성 혁신에 두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기존 기업과 인력의 존속성 혁신에서 찾고 있다.


생산의 거점 역할을 해온 지역에는 수년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한 고숙련 근로자들이 다수 존재한다. 이들 고숙련 근로자의 경쟁력은 특허로 출원되기 어려운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노하우의 결정체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제조업 현장을 방문하다보면, 회사 몇몇 관계자 이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구역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다. 이는 특허로 보호받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는 노하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현장 직원의 노하우와 경험이 회사의 경쟁력을 만들어 낸 셈이다. 


현재 많은 OECD 국가들이 고숙련 근로자를 활용한 지역 내 도제제도, 학교와 회사가 함께 운영하는 이원적 직업훈련제도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산업 현장의 명장들이 학교에서 현장 부합형 교육을 실시하거나 교사가  현장을 찾아가 배우고 이를 다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방식들이다. 이러한 교육 과정은 인력 부족에 시달려 결국 지역을 떠나야 하는 지역 소재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지역 내에 상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뿐만 아니라 지역 내 청년들이 거주지를 옮기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 또한 제공한다. 해당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기업과 근로자들의 존속성 혁신을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울산 지역에는 조선소에 취업할 기회가 생기면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지역 내 중공업 회사에 취업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에 해당 지역 소재 대학이 야간 학과를 개설하여 학업과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할 정도였다. 이는 좋은 일자리와 해당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교육 기회가 충실히 제공된다면 지역으로 다시 청년들이 유입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존속성 혁신을 활용하는 사례는 더 있다. 지역의 전통성을 활용한 산업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OECD 조사에 따르면, 지역 내 전통시장과 식당을 활용한 미식산업은 관광서비스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 17%에 달한다. 일례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일부 지역에서는 30% 이상을 차지하기도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일반 관광객은 하루 평균 지출액이 55유로인 데 반해, 와인투어 관광객은 하루 평균 200유로를 지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미식산업은 수익성이 높고, 추가적인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지 않으며, 특별한 호재가 없는 지역에도 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OECD가 회원국들에 지역의 전통성을 활용한 미식산업 등의 육성을 적극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해외 사례와는 달리 최근 우리 사회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주목하고 있는 전략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오랜 기간 동안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지역 토착 기업과 그 속에서 생활해온 근로자의 역량과 노하우에 주목하기보다는 정보기술(IT), 인공지능, 신재생에너지 등 와해성 기술에 근거한 앵커 기업 유치 및 신규 인력 확보에만 더욱 관심이 큰 듯하다. 그야말로 ‘집토끼’보다는 ‘산토끼’에 더욱 관심이 큰 것이다.


물론 우리 지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들 신산업 분야에 대한 관심과 육성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럴싸한 미래 먹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오랜 시간 동안 지역경제에 기여해온 토착 기업들을 등한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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