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서비스 가격과 서비스 생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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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일의 경제새판짜기

최저임금, 서비스 가격과 서비스 생산성

by eKHonomy 2018. 3. 16.

요즘 물가 인상을 피부로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김밥 가격은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6%, 삼겹살은 7.4%, 짜장면 3.2%, 김치찌개 백반은 2.7% 인상됐다고 한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4%인데, 외식물가지수 상승률은 2.8%로 두 배나 높았다. 외부 음식점뿐만 아니라 편의점, 대형마트, 커피숍 등 어디를 가도 가격 상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상당수 생활용품과 식료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되면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압박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부 언론에서는 ‘생활물가 폭등’이라는 자극적인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정부가 ‘강 건너 불 구경’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위는 시장 가격에 전혀 압력이나 규제를 가하지 않는다”고 밝힌 이후 전방위로 가격 인상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물가를 정부가 단속해야 한다는 발상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난다. 공정위는 물론이고 기재부에서도 ‘단속’에 의한 물가관리를 해서는 안된다. 물가관리는 기본적으로 통화정책과 환율정책 등 거시경제정책에 의해서 하는 것이고, 특별한 경우에 수급불균형의 조절에 나설 수는 있다.

 

물가 인상과 관련해서 정부를 비난하는 근저에는 최근의 가격 인상에 정부가 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 한 요인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대책 없이 최저임금을 올려놓고, 막상 물가가 오르자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생활물가 상승을 촉발한 주원인이 농산물 가격 급등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달 농산물 가격은 한파와 설 대목 등 계절적 요인으로 7.4%나 올랐다. 일시적이고 일과성이다. 정부가 시장의 최근 가격 인상 기조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다. 아직 정확한 분석은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사실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라 물가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현상이다. 대책을 세우고 단속할 일이 아니라, 환영해야 할 일이다.

 

최저임금을 올려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자면 누군가는 그만큼 양보를 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최저임금을 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은 고용주나 가맹점 본부가 나누어 질 수도 있지만, 가격 인상을 통해 소비자도 일부 부담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저임금 노동자는 대부분 서비스 부문에 몰려있기 때문에 서비스 가격의 인상이 불가피하고, 이로써 중산층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해 약간의 희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물가 인상의 피해는 서민들에게도 가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직접적인 혜택과 간접적인 효과까지 따져보면 서민들보다는 중산층이 서비스 가격 상승의 부담을 대부분 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의 분배 상황을 개선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서비스의 가격이 매우 낮다. 비근한 예로 대리운전비를 보면 미국에 비해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더구나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대리운전 요금은 지난 20년 동안 점점 내려갔다. 밤에 잠 안 자고 투잡이라도 뛰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결과다. 그 혜택은 대리운전 서비스를 이용하는 중산층이 받는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이런 걸 좀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소득수준을 비교할 때 환율에 따라 달러 기준으로 환산해서 비교하는 방법이 있고, 각 나라의 물가를 고려해서 실제 구매력을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 가난한 나라일수록 달러 환산 명목소득에 비해 구매력 기준 실질소득이 높다는 것이 국제경제학의 기본 법칙이다. 환율은 농산물이나 공산품 등 무역거래가 많은 교역재의 가격을 기준으로 형성되는데, 무역거래가 불가능한 비교역재인 서비스의 가격은 반영되지 않는다. 교역재의 경우에는 환율로 환산한 각국의 가격이 비교적 유사하지만, 비교역재인 서비스는 가격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일수록 임금이 낮기 때문에 노동집약적인 서비스의 가격이 낮은 것이고, 따라서 같은 명목소득을 가지고서도 실제로는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국제적으로 달러 기준 명목소득의 수준이 매우 높은 편인데도, 마치 가난한 나라처럼 명목소득에 비해 실질구매력이 훨씬 크다. 이는 서비스 가격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하고, 저임금 노동이 만연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나 정책당국자들이 우리나라의 서비스 생산성이 너무 낮다고 호들갑을 떠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규제완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흔히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헛다리를 짚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서비스 생산성이 낮은 중요한 이유로는 지식기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하나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가격이 낮은 것이다. 서비스의 생산성은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서비스의 부가가치는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즉 우리나라 서비스의 가격이 낮기 때문에 서비스의 생산성이 낮은 것이고, 따라서 서비스 가격 인상은 곧바로 서비스 생산성의 향상을 의미한다. 미장원에서 머리 깎고 1만원 내면 (편의상 소모품 비용과 감가상각이 없다고 가정하고) 미장원의 부가가치가 1만원이지만, 2만원을 내면 미장원의 부가가치가 2만원이고 따라서 생산성이 두 배로 증가한다. 대리운전 서비스의 요금이 미국 수준으로 높아진다면 대리운전 기사의 생산성은 10배로 뛰게 된다.

 

만약 서비스 생산성을 부가가치 기준이 아니라 시간당 노동에 따른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서비스의 양을 기준으로 측정한다면 어떨까? 고급 서비스일수록 이러한 측정은 불가능하겠지만, 단순 서비스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 경우 아마도 우리나라의 서비스 생산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한다.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은 한국의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잘 안다. 친절할뿐더러 지구상 어디보다도 빠르기 때문이다. 그동안 친절하고 빠른 서비스의 혜택을 누려온 중산층이 조금 양보해서 서비스 노동자들의 임금도 올리고 서비스 가격도 올리자는 사회적 합의를 기대한다.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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