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13월의 민망한 보너스와 삼성전자 성과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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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편집국에서]13월의 민망한 보너스와 삼성전자 성과급

by eKHonomy 2017. 2. 10.

사내 게시판에 연말정산 서류제출을 2월10일 최종 마감한다는 안내문이 올라왔다. 지난달 설 연휴 직전까지 다 제출하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서류를 내지 않은 직원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흔히 연말정산은 직장인에게 ‘13월의 보너스’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몰라서 못했다가 이번에 어머니 의료비를 연말정산에 포함하면서 환급액이 100만원 가까이 늘어나게 된 한 후배는 “정말 보너스 같다”며 기뻐했다.

 

연말정산은 매달 월급에서 세금을 원천징수해간 국가가 연말에 가서는 많이 낸 직장인에게는 돌려주고, 덜 낸 이에게는 더 받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고 한다. 국가가 인심 쓰듯 주는 선물이 아니다. 월급쟁이가 내야 하는 세금은 변함이 없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던 도토리를 아침 네 개, 저녁 세 개로 바꾸니 좋아하더라는 원숭이처럼 취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모든 직장인에게 연말정산이 보너스는 아니다. 지난해 연말정산(2015년 귀속)을 신고한 근로소득자 중 환급액이 있었던 1140만명은 1인당 세금 47만2688원씩을 돌려받았다. 올해도 규모는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통계를 뜯어보면 전체의 60%인 673만명의 환급세액은 1인당 12만6492원뿐이었다. 이들은 근로소득 2000만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이다. 이 정도를 가지고 보너스라고 하기에는 민망하다.

 

2015년 근로소득 10억원을 초과한 초고액연봉자 중 862명은 1인당 2194만원씩 세금을 돌려받았다. 1억원 초과~2억원 이하인 고액연봉자가 돌려받은 세금은 평균 262만원이었다. 최소한 이 정도는 돼야 보너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소득이 1억원을 초과하는 이는 19만명으로 전체 근로소득자의 1%에 그친다.

 

지난달 설 연휴 직전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는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때 1만명 넘는 인원이 접속을 대기하기도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돌려받으려는 직장인들이 연말정산 서류를 떼려고 일시에 몰린 탓이다.

 

국세청 홈페이지가 북새통을 이룰 때 ‘진짜 보너스’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전자가 설 연휴 직전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다. 반도체 등 일부 부서 직원들은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2015년 말 기준 삼성전자 직원의 성과급을 포함한 평균 연보수는 1인당 1억100만원이었다. 지난해 연봉이 7000만원이었다면 일부 직원은 3500만원가량을 성과급으로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소득 10억원 초과 초고액연봉자의 연말정산 평균 환급액이 2000만원 넘는다고 놀랄 일이 아니었다.

 

몇 만원 더 받아보겠다고 국세청 연말정산 홈페이지 접속 경쟁을 벌였던 직장인들은 삼성전자 성과급 소식에 ‘일하기 싫어졌다’고 한숨을 내쉰다. 물론 ‘기본급이 적다’ ‘출장과 야근이 잦다’ ‘과제와 격무에 시달린다’ ‘과장만 돼도 명퇴 걱정이 든다’ 등 삼성 내부의 푸념도 적지 않다. 어찌 됐든 삼성의 거액 성과급은 다른 직장인에게 부러움을 안겼다. 삼성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정서는 양면적이다. 최순실 무리에게 수백억원을 퍼준 ‘나쁜 기업’이라고 비난하면서도 한편에서는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다.

 

삼성을 욕하는 것은 지분 1%만 갖고도 경영 전권을 휘두르는 총수 일가의 행태가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성 측은 총수 일가도 지분에 걸맞은 배당을 받고 다른 임원과 마찬가지로 월급을 받아갈 뿐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20여년 전 아버지로부터 61억원을 받아 증여세를 뺀 45억원을 투자했던 이재용이 지금 재산을 7조원대로 불린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삼성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에 동원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삼성이 큰 이익을 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건 사실이다. 이면에는 총수 일가에 삼성의 부가 집중되고 있다.

 

정상 지배구조에 따라 제대로 된 이사회가 있었더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졸속 합병은 이뤄지지 않았을 테고, 최순실에게 거액을 바치는 황당한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가 삼성을 넘어 사회 전체를 골병에 들게 했음을 보여준다.

 

재벌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총수 일가가 부를 독점하는 구조를 깰 수 없다. 4년 넘도록 미뤄지고 있는 상법 개정안이 임시국회에 또 올라와 있다.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주요 내용이다. 여당과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지만 상법을 개정할 좋은 기회이다. 상법 개정이 경제 불평등을 완화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안호기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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