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개방형 통상국가, 미워도 다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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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경제칼럼

[기고]개방형 통상국가, 미워도 다시 한번?

by eKHonomy 2017. 2. 10.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외교부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 소송에서 승소, 마침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문서가 공개되었다. 물론 전부는 아니다. 딱 하나 협정문 서문에 포함된 한 조항에 관한 것이다. 이 조항은 서문의 투자와 관련된 5번째 단락에 들어 있다. 10년 전 참여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강연회나 토론 등에서 지적했다. 아니 외쳤다. 불평등조항이라고 말이다. 매우 난해한 이 조항은 번역도 매끄럽지 않아 일반인이 이해하기가 만만치 않다. 문언만 놓고 간략히 말하자면 한국기업은 미국 내에서 미국기업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미국기업은 한·미 FTA 협정에 의거해 한국 내에서 한국기업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공개된 협상문서를 자세히 보면 당시 우리 협상팀도 이 조항이 불평등함을 인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미합중국이란 말 옆에 ‘대한민국’을 병기하고자 세번이나 시도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결국 관철된 것은 미국안이었다. 협상을 하다 보면 밀릴 수도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 조항을 두고 정부 측은 당시 “글로벌 금융허브를 추구하는 우리의 금융산업 발전방향과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곧 불평등조항이 한국 금융산업 발전방향이라는 말이다. 잘못된 협상보다 더 큰 잘못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국민을 기만한 일이었다.

 

근 십년 만에 마주한 한·미 FTA의 민낯을 지켜보며, 나는 참여정부가 표방한 ‘개방형 통상국가’를 추억해 냈다. 여기에 ‘좌파 신자유주의’도 빼놓을 수 없겠다. 참여정부 10년, 아직 온전한 평가는 이르다. 굳이 공(功)에 박할 일 없고, 과(過)를 숨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계만 놓고 보더라도 한·미 FTA와 신자유주의를 내세울 업적이라고 평하는 이는 다수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전 대표가 트럼프 시대 우리 외교안보의 방향을 밝혔던 적이 있다. 곧 차기 집권 시의 외교안보 정책 말이다. 그런데 그중 놀랄 만한 문구를 발견하고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개방형 통상국가!’ 이뿐이 아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대선출마 선언에서 ‘당찬 외교’를 말했다. 좋다. 이어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6인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계승하는 것으로 자신의 경제정책을 대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중 첫째가 개방형 통상국가였다.

 

그렇다. 개방형 통상국가를 앞세워 10년 전 참여정부는 한·미 FTA를 강행했다. 이후 10년, 이 말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 10년 동안 우리 모두는 더 불평등해졌고, 우리 사회는 더 불공정해졌다. 모든 것이 한·미 FTA 때문이라고 말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미 FTA는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의 상징 같은 거다. 그래서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로선 ‘아, 좌파 신자유주의 또 하자는 건가’ 그런 의구심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한·미 FTA를 둘러싼 논란, 그리고 그 막무가내식 FTA 추진이 가져다준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의식과 성찰이라도 있다면 10년 만에 같은 말을 재탕하진 않을 거다. 또 통합과 연정을 말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의 원인을 제공한 개방형 통상국가라는 낡디낡은 구호를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산인가.

 

트럼프 시대, 세계는 전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보호주의니 하면서 다시금 통상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고 있다. 서비스 특히 금융자유화를 손대지 않고 상품부문의 장벽을 강화하겠다는 트럼프주의를 보호주의라 부를 수 있을지 나는 의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급진 국가이기주의 충격은 우리에겐 아주 위협적이다. 이런 엄중한 조건에서 낡은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무역’ 노래를 혼자 부른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나올 일은 아니다. 수출이 는다손 치더라도, 성장률이 그리고 일자리가 증대되는 것도 아니다. 4차 산업혁명의 높은 파고도 우리 문을 두드리지 않는가. 개방형 통상국가도, 개방 만능주의도, 교조적 수출지상주의도 이제 수명을 다했다.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는 말이다. 이젠 그 대안을 논할 때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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