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불평등이 성장을 저해한다면서 성장을 위해서도 소득분배를 개선해야 한다는 정책 권고를 하고 있다. 세계불평등 데이터베이스(WID) 자료를 보면 한국은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3%를 차지해 불평등이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높다.
특히 자산불평등이 전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고, 자산불평등에서도 부동산의 영향이 크다. 법인 소유 토지의 경우 상위 1%의 법인이 토지를 소유한 비중이 금액 기준으로 2007년 63.9%였는데 2017년 73.6%로 9.7%포인트 증가했다. 상위 1%의 1인당 주택 보유 수는 2007년 3.2채에서 2017년 6.7채로 2.1배 증가했다. 다주택자의 주택 보유 비중 증가에 따라 무주택 전·월세 가구 비중은 2005년 37.1%에서 2017년 44.1%로 늘어났다. 그만큼 주택 소유 불평등이 증가한 것이다. 일부가 주식을 많이 소유해도 주식이 없는 사람은 손해 보지 않지만 부동산 소유 집중으로 주택과 전·월세 가격이 상승하면 집 없는 서민은 피해를 본다. 부동산이 다른 금융자산보다 규제를 더 받는 건 당연한 것이다.
노인빈곤율은 44%인데 사회복지는 부족하고 기대수명은 증가하니 중장년 이상 세대는 노후 불안으로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 부추김도 있었겠지만, 돈이 좀 있는 고령층이 부동산 투자에 집착하는 근저에는 노후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더욱이 저금리 상황에서 조세 구조마저 부동산 투자에 유리하게 짜여 있기에 위험 대비 부동산 투자 수익률이 실제로 매력적이고, 고령층은 부동산 불패 신화 경험까지 갖고 있으니 부동산 투자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주택 실수요자의 목표 저축액을 올리고, 전·월세 증가로 세입자 소득이 다주택 소유자로 이전되면서 44%에 달하는 무주택 가구의 소비를 위축시킨다. 주거 불안정으로 청년층의 결혼율과 출산율은 떨어지고, 장기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잠재성장률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늦춰졌지만 최저임금 1만원의 월 환산액은 209만원이다. 신혼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최악의 경우 둘 다 최저임금 일자리라고 해도, 가구 소득은 418만원이다. 청년의 경우 주거안정 문제만 해결되면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주거안정은 그만큼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수익률이 높으면 여유재원은 투자 위험이 큰 혁신투자로 가지 않고 안전한 부동산 투자로 몰리게 된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의한 임대료 상승은 생산원가를 높이고 가격 경쟁력도 저하시킨다. 상가 임차 상인의 혁신적 아이디어와 경영 개선으로 높은 수익이 발생해도 건물 임대료 상승으로 수익 대부분이 건물주에 귀속된다면 혁신 활동은 활성화될 수 없다. 따라서 혁신성장을 위해서라도 부동산 안정화와 임차인 보호 제도가 강화돼야 한다. 사회안전망 강화로 노후빈곤 문제가 완화되고, 공공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는 등 주거 안정이 확립돼야 노후 대비 부동산 투자 수요도 줄어든다. 더불어 부동산 가격 안정과 함께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9·13조치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이 주춤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것은 주거비 하락, 소비여력 확대 등 포용성장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최대 패착은 긴축재정과 함께 부동산 연착륙 실패다.
부동산 정책 성패는 부동산투자 장기기대수익률에 달렸다. 부동산 장기기대수익률이 다른 자산에 비해 낮다면 부동산 투기를 할 이유가 없다. 보유세 강화 등 부동산 보유 비용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기존 임대사업자에 대한 각종 특혜는 1~2년 유예 기간을 두고 폐지해서 유예기간 내에 보유 주택을 매물로 내놓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기존 임대사업자 조세 특혜 폐지에 반대하는데, 다른 세법은 매년 개정하면서 임대사업자 조세 특혜만 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부동산 경기부양이 아닌 부동산 질서 확립을 위한 세법 개정은 해야 한다. 규제 강화에 의한 부동산 경착륙 가능성을 우려하는데, 경착륙 조짐이 보이면 국민주택 규모 이하 매물을 매입임대사업으로 대거 흡수해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건설경기, 주거안정, 저출산 대책 등 1석3조의 정책이다. 특히 에코세대를 위해서 4~5년 동안 청년 공공임대주택사업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사업은 복지처럼 고령화에 따라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가 주택 자산을 보유하는 자본투자사업이므로 문재인 정부가 국채발행을 해서라도 가장 공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
'경제와 세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8년 경제정책 복기 (0) | 2018.12.27 |
---|---|
공공임대주택 관리·지원 시급하다 (0) | 2018.12.20 |
고시원과 하녀방을 통해 본 주거복지 (0) | 2018.11.22 |
입시비극, 제도 문제가 아니다 (0) | 2018.11.08 |
적기 놓친 거시정책이 부른 경기둔화 (0) | 2018.11.0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