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반일, 생태협력으로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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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우석훈의 생태경제 이야기

혐한·반일, 생태협력으로 넘자

by eKHonomy 2014. 11. 6.

살다보니, 정부의 공식 협상단으로 유엔 등 각종 협상에 참여하는 일을 5년 정도 했던 것 같다. 청와대에서 매번 협상단을 임명하고, 정부의 공식 대표로서 가져야 할 입장을 훈령으로 지시한다. 그 훈령의 범위 내에서 소위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출마와 선거 같은 건 안 한다는 게 나의 신조였지만, 하여간 그 시절에는 정부의 지침대로 출마도 하고, 선거도 하고, 아시아 대표로 선출도 되었다. 그때 한 가지 배운 것은, 생태적 사유를 한다는 것이 지구 차원에서 보편적 지지를 얻는 데 조금 유리하다는 점이다.

지난주에 도쿄에 갔다. 두 번째 일본어 번역본이 출간되어 기념강연 같은 것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 일본에서 전국 순회강연을 할 정도의 인지도는 되지 못한다. 도쿄와 도쿄 인근 지역의 지식인들 사회에서 강연을 할 수 있지, 히로시마나 후쿠오카 그런 데 가면 ‘쟤 누구야’, 그런 수준이다. 이번에도 일본 측 출판사에서는 전국 순회강연 같은 것을 검토했지만, 솔직히 나의 인지도는 그럴 수준이 안된다는 판단이 있었다. 다만, 예전에 너무 가보고 싶었던 삼성당서점, 바로 그곳에서 강연했다는 게 나름 기쁨이었다. 우리식으로 치면, 광화문 교보 정도 되는 곳이다.

내가 처음 일본에 간 것은 1999년, 오사카였다. 그 후로 꽤 많이 다양한 이유와 경로로 일본에 갔다. 그동안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했다. 자민당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것도 보았고, 그 민주당이 다시 무너져 자민당 시대가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그렇지만 그 기간에, 지금처럼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혐오하는 시기는 없었다. ‘적대적 공존’이라고 할까,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이 지금처럼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증오를 만들어내는 시기는 처음 보았다.

지금 일본은 혐한류라고 부르는, 한류의 반대급부에서 어쩌면 당연히 발생할지도 모르는 그런 새로운 트렌드의 클라이맥스로 가는 중이다. 한류와 혐한류,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좋아하는 게 생기면, 당연히 지나치게 혐오하는 것도 생긴다.


일본에서는 요즘 혐한류 서적이 베스트셀러 앞에 있다. 나에게도 연초부터, 그 혐한류에 대한 반대 서적을 써줄 수 있겠느냐는 부탁이 왔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해봤는데, 솔직히 귀찮았다. 별로 본질적인 얘기도 아닌 것에 내 힘을 쓰기도 싫고, 그렇게 돈 될 책에 움직인 적도 없고, 그래서 그냥 바쁘다고 대답했다.

이 정도는, 상식을 가진 한국 독자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런데 삼성당서점의 강연을 비롯해서, 몇 번에 걸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 과정에서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두 나라 사이에 시민사회의 생태적 협력에 관한 반응이 뜨거웠다는 점이다.

“한·일 두 나라는 원전과 미세먼지, 사회적 안전 등에 관해서 시민사회가 더 많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강연을 마무리했다. 아직 통역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박수가 먼저 나왔다.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혐한과 반일을 넘을 가능성이 생태적 협력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적 시민, 이게 한국과 일본이 고민할 다음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우석훈 | 영화기획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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