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주총 이후의 삼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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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의 경제시평

17일 주총 이후의 삼성은?

by eKHonomy 2015. 7. 14.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총이 이틀 남았다. 당사자들은 오죽하겠는가마는, 나 역시 심한 감정노동 몸살을 앓고 있다. 엘리엇의 공격 개시 이후 상황을 복기하면서, 17일 주총 이후 삼성의 과제를 생각해본다.

엘리엇 관련 뉴스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합병 주총의 승패가 아니라, 이것이 가져올 후유증이었다. 12년 전 SK-소버린 사태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을 크게 후퇴시켰던 악몽이 바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 법, 우려했던 일들이 그대로 재연되었다. 각자의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고, 엘리엇 사태에 대한 평가도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최소한 사실 확인에서만큼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삼성의 막무가내 로비와 언론사의 천박한 상업주의와 지식인들의 비굴한 처세술이 어우러져 혹세무민에 가까운 주장들이 난무했다. 그 결과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과 한국경제의 장기적 이익에 역행하는 것이니, 참으로 어리석다.

첫째, 헤지펀드와 포트폴리오투자펀드를 구분하지 않고, 해외투자자들을 모두 한통속으로 몰아갔다. ‘어쨌든 그들은 한패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해외투자자라고 해서 그 전략 내지 철학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홍콩·싱가포르에 아시아 지역본부를 두고 한국에 투자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은 ‘웬만하면’ 기존 경영진을 지지하는 성향을 보인다. 지지하지도 않는 회사에 왜 장기 투자하겠는가. 자산 500조원으로 세계 3위 연기금인 ‘네덜란드연기금’(APG)의 관계자가 지난주 삼성을 방문하여 전달한 메시지의 핵심은 “우리는 헤지펀드와 다르다. 당신네들을 지지할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먹튀자본’론을 앞세운 시대착오적 이분법이 그 명분을 제거해버렸고, KCC에 넘긴 자사주 5.96%보다 더 많은 표를 잃었다. 안타깝다.

둘째, 헤지펀드는 공격대상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할 의도나 능력이 없음에도, 삼성그룹이 붕괴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12년 전 소버린이 SK(주)의 지분을 14.99%만 취득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15%를 넘기면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심사 대상이 되고, 전 세계에 걸친 투자 내역과 전략을 공정위에 신고해야 하는데, 어느 헤지펀드가 그러겠는가. 또한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헤지펀드는 공격대상 기업을 인수하여 경영할 인적·물적 기반도 없다. 따라서 삼성-엘리엇 공방전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선인데, 이를 경영권 위협으로 둔갑시킨 공포 마케팅은 삼성이 억지춘향 격으로 내놓은 주주친화 정책의 진정성마저 의심케 만들었다. 안타깝다.

셋째, 자본시장을 돈 놓고 돈 먹는 제로섬 게임의 투기판으로만 치부했고, 엘리엇이 돈을 벌면 우리의 국부가 유출된다는 식의 편협한 민족주의 정서로 대응했다. 우리의 자본시장이 선진국은 물론 중국·아세안국가보다도 매력 없는 시장으로 취급되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시장은 기업에 대한 정보를 생산하고, 기업의 지배구조를 정렬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자본시장이 그 순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는 게임의 공정성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런데 ‘이재용 주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제일모직·삼성SDS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국민연금이 스스로 정한 규칙마저 위배하면서 의결권 행사 방향을 단독처리하는 자본시장 환경이야말로 국부 창출을 저해하고 헤지펀드의 공격을 자초하는 요인이다. 누구를 탓하는가.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엘리엇은 단기 투자자가 아니다. 17일 주총에서 삼성이 이긴다고 하더라도 엘리엇이 손 털고 나갈 리가 없다. 공격 기회와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승계 과정은, 기승전결로 표현하면, 이제 승을 마무리하는 단계에 불과하다. 즉 17일 주총은 게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그 첫 전투에서 삼성은 카드를 다 보여주었고, 한국의 자본시장은 밑바닥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전쟁은 어떻게 치를 것인가. 언제까지 삼성은 예외라고 주장할 것인가. 안타깝다.


삼성과 엘리엇 공방 일지_경향DB



17일 주총 결과와 관계없이,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핑계 대지 마라. 다 자초한 일이다. 물론 아직 기회는 있다. 단, 지금까지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교훈을 얻을 때에만 그렇다. 이 모든 것이 이재용 부회장 지분율 높이기에만 집착했기 때문임을 반성하고, 진정한 승계는 시장과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를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라.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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