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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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우석훈의 생태경제 이야기

'88만원 세대'

by eKHonomy 2011. 5. 2.








정태인/새사연 원장

뱅뱅 머릿 속을 맴돌 뿐,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예컨대 “그/그녀가 왜 나를 떠났을까”같은 종류다. 아무리 골몰해 봐야 답이 없을 것이라거나, 기껏 답이라고 내봐야 틀릴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을 나이가 들만큼 들어서야 분간하게 됐지만, 우석훈 박사가 영웅처럼 제기하고 돈키호테처럼 답(짱돌을 들으라니^^) 을 낸 ‘88만원 세대’가 그런 요령부득의 화두다.

출처: 경향신문

요즘 내 결론은 ‘세대간 착취’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다음 세대 대부분을 착취하는 걸로 귀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난 자본가가 노동자를 괴롭히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이윤극대화 방정식을 풀다 보니 그게 결국 착취에 이르른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기성 세대가 최선을 다한 결과가 결국 아이들 세대 전체를 착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깨달음이다.

우리가 결코 빠져 나갈 수 없는 미로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게 있다. 혹시 내가 그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을 때, 자문해봐야 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이렇다. “남이 다 하면 나도 따라 할 수 밖에 없다”(공포), 그리고 “남이 다 안 하는 경우 나만 하면 ‘대박’이다”(탐욕). 이 두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바로 사교육이 그렇다. 그리고 부동산(주식)에 대한 우리 태도도 비슷하다. 남들이 다 과외시키는데 우리 애만 마냥 놔둘 수 없고, 남들이 다 빚내서 집사는데 나만 유유자적, 안빈낙도 하다간 영원히 셋방살이 신세일 거 같고, 반대로 남들이 다 안 하는 경우 어디 값싸고 좋은 과외 선생이나 잘 나갈 땅이 없나, 기웃거리는 우리는 바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죄수의 딜레마는 ‘김승옥의 염소’보다 더 힘이 세다.

두 게임의 결과로 사교육과 부동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래서 이 게임은 아주 희귀한 예외를 빼곤 백이면 백 부자들이 이긴다. 때론 지배계급이 처음부터 그런 게임을 설계할 수 있고 어쩌다 보니 그런 상황이 된 경우 부자들은 그야말로 횡재한 것이다. 졸릭(Zollick)의 ‘경쟁적 자유화’는 죄수의 딜레마를 응용한 것이고 김현종은 부처님 손바닥안의 손오공처럼 한미 FTA를 추진했다(앞에서 말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적용해 보라).

출처: 경향신문



집값과 땅값이 하늘로 치솟고 과외비에 허리가 휜다. 보릿고개가 사라진지 이미 오랜데, 우리 아이들이 더 절망적인 건 대부분 아무도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내 아이만은 그런 함정을 신묘하게 비켜 나갈 것이고 그러면 ‘대박’이라는 황당무계한 낙관이, 아무리 밤을 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고 ‘신의 직장’에만 목을 매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분명히 ‘세대간 착취’다. 우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누려야 할 자연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만 미래를 착취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근시안적 경쟁 탓에 이미 올라버릴대로 오른 집값을 아이들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단 1점에 목을 매게 하는 입시는 또 어떤가.

우리 모두 매일 한 삽씩 절망의 늪을 파면서 내 아이만은 늪 밖에, 아름다운 고층 빌딩에 살 수 있을거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이 우리 아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게임이론으로 말하자면 ‘죄수의 딜레마’를 ‘사슴사냥게임’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고 현실로 말하자면 지금의 무한경쟁에서 다 같이 빠져 나오자고 합의하면 된다.  

‘사교육 금지’, ‘부동산 투기 금지’에 마음을 모을 때만 비로소 이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 홀로 그럴 수 없다는 이유로 지는 게임을 계속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말 그대로 ‘88만원 세대’일 수 밖에 없다. 투기의 미몽에서 얼마간 벗어난 지난 지방선거와 재보선은 우리에게 비춘 한줄기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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