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냉장고와 에어컨을 비롯한 가전제품을 한꺼번에 구입하게 됐다. 발품 파는 쇼핑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목돈을 허투루 쓸 수 없어 이번에는 여러 곳에서 가격을 신중하게 비교해보기로 했다. “여기에서 이렇게 가격 할인이 됩니다.” 한 가전업체의 오프라인 대형매장에서 영업사원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할인가로 구매하려면 발급에 일주일이 걸리는 신용카드에 신규 가입해야 하고, 할인액은 다음 구매 때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적립해준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다른 매장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최저가를 검색하고는 나도 모르게 ‘오프라인에서 물건 사는 시대가 끝났구나’라고 중얼거렸다. 사양이 비슷한 제품이고 본사 직송인데 가격 차이가 너무 컸다. 친절한 그 영업사원의 약지에서 반짝이던 소박한 결혼반지가 떠올랐다. 모두 온라인에서만 물건을 사면 그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노동자들은 무엇으로 밥벌이를 해야 할까.
현재 유통업계는 e커머스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는 중이다. e커머스의 ‘유통 정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11조8939억원으로 전년 대비 22.6%나 늘었다. 이 중 모바일쇼핑 거래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61.5%다. 그런데 이게 ‘겨우 시작일 뿐’인 단계다. 전체 소비시장에서 e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2023년쯤 소매시장 내 e커머스 점유율이 절반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소비의 절반을 온라인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으로 따지면 오프라인 매장에서 그만큼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점유율 확대를 노리는 e커머스 업체들의 투자는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 e커머스 업체 ‘쿠팡’은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2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매출액이 4조원을 넘으나 적자 규모가 최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이 회사 관계자는 큰 걱정이 없어 보였다. “물류와 결제 플랫폼 투자 등 미래를 위한 준비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일 뿐”이라며 “쿠팡의 운영상품 수(SKU)는 500만개로, 일반 대형마트 7만개를 능가하는 데다 밤 10~12시 사이에 주문해도 다음날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계속 보완해가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굳이 차를 몰고 카트 끌고 최저가도 아닌 상품을 집까지 들고 올 이유가 없으니 온라인 소비습관이 들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마트와 롯데마트 모두 영업이익이 감소한 건 불가피한 일인 듯하다.
그나마 오프라인 매장은 ‘실물을 직접 보고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지만 5세대(G) 이동통신에 바탕을 둔 ‘리테일 테크’가 보편화되면 의미를 잃을 수 있다.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을 통해 물품이 마치 눈앞에 있는 듯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게 가능해진다면 굳이 매장까지 발걸음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이 같은 패러다임의 전환은 대부분의 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파괴적 혁신’의 단면이다. 인터넷은행이 보편화되면서 은행은 오프라인 영업점 창구가 줄어들고, 공장은 로봇으로 굴러가면서 생산직 노동자의 숫자가 줄어든다. e커머스는 새로운 판매자와 정보기술(IT) 일자리를 만들지만 그 일자리의 숫자나 질적인 측면은 아직 낙관하기 이르다. 미국 아마존의 경우 창고에서 주문물품을 직접 골라 담는 ‘핸드피킹’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가 문제가 된 적이 있다.
최근 만난 한 채용서비스 업체 관계자는 “산업구조가 변하면서 기업들의 채용 규모가 줄었는데 앞으로도 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나마 사정이 괜찮다는 100대 기업의 채용은 2016~2018년에 2만명쯤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싸고 편리한데 일자리는 늘지 않는 이런 소비,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 왠지 찜찜하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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