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계부채의 날이다. 한국은행은 2분기 가계신용 동향을 발표하고, 정부는 때맞춰 정부 합동으로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 “특별한 날”을 감상하는 몇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먼저 시간을 되돌려서 지난 4월18일로 거슬러 가 보자. 4·13 총선이 야당의 승리로 끝난 직후, “금융위, 소액 장기 연체 채권 소각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 누가 보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대표 공약이었던 “천만원 이하, 10년 이상 연체 채권 즉시 소각”을 의식한 정책기조의 변화였다. 따라서 오늘 대책에 이런 말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 감상 포인트다. 없다면 그것은 현 정부의 야당 평가를 반영한 것이 될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 DB
두 번째 포인트는 정부가 가계부채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보느냐 아니면 채무자인 가계의 입장에서 보느냐가 그것이다. 금융기관의 입장에서 본다면 “금융기관은 담보가 충분해서 괜찮다”는 소리가 녹음기처럼 나올 것이다. 채무자인 가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채무자의 울음을 멈추게 할 여러 대책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학자금대출에 시달리는 청년들을 위해 상환 시기를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한 시점 이후”로 연기한다든지, 개인회생 절차의 회생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이런 게 없다면 꽝이다.
세 번째 포인트는 정부가 가계부채의 급증을 해석하는 시각이다. “가계가 자금을 방만하게 운용한 모럴 해저드의 결과”로 보는가, 아니면 “금융기관의 과잉대출 결과”로 보는가가 그것이다. 전자라면 “빚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갚는다는 관행을 확립해 나가겠다”는 말을 하면서 철부지를 꾸짖는 어른 행세를 할 것이고, 후자라면 부실 대출의 책임을 금융기관에 묻고, 금융기관의 과도한 채권추심은 억제하는 정책을 발표할 것이다.
그런데 세 번째 포인트의 경우 정부가 미사여구를 교묘하게 버무려서 그럴듯한 대책을 선보일 경우 그 “진면목”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가 중도금 대출에 대해 LTV, DTI 심사를 적용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면서도, 정작 부채탕감은 모럴 해저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고 하자.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자가당착이다. 채무자가 빚을 꼭 갚아야 하고, 상환능력이 없더라도 부채탕감을 안 해주면 금융기관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귀찮게 상환능력 심사를 정성 들여 할 것인가? 아니다. 대충 심사하고 신나게 대출해 줄 것이다. 빚을 안 갚는 것은 채무자 탓이지, 금융기관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과잉대출 금지는 공염불이 되고, 상환능력 심사는 그저 귀찮은 규제일 뿐이다.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수미일관한 정책 처방인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금융기관에 부실대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채무자가 빚을 안 갚으면 그건 금융기관 책임이니 알아서 대출해 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기관은 기를 쓰고 “이 사람이 돈을 떼먹을 사람인가, 아니면 잘 갚을 사람인가”를 심사해서 대출해줄 것이다. 과잉대부는 사라지고, 상환능력 심사는 규제 당국이 하지 말라고 해도 금융기관이 앞장서서 할 것이다. “꼭 갚을 사람에게만 대출해 주는 관행”이 확립되는 것이다.
이런 정책 처방에 대해 두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첫째, 이런 상황이면 도대체 누가 성실하게 빚을 상환할 것인가라는 항변이다. 계속 빚을 써야 할 사람이 그들이다. 금융기관에 밉보여서 거래 기회가 단절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사람들 말이다. 현대 신용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 금융기관에 밉보이면 버스도 타기 힘들다.
두 번째로 저소득층 서민은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맞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서민이라면 당연히 대출을 해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럼 서민은 그냥 죽으라고? 그것도 아니다. 이들에게는 소득창출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의무고 제대로 된 정책 처방이다.
올림픽도 끝났고, 청문회도 물 건너갔다. 잔치가 끝나고, 연극도 취소된 현실 속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마주한 차가운 현실이 가계부채 문제다. 부디 정부가 오늘 올바른 대책을 내놓을 것을 고대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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