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확대’라는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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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확대’라는 도박

by eKHonomy 2021. 1. 5.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해 말 취임과 동시에 “설 전까지 공급대책을 발표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시장의 관심은 벌써부터 대상 지역이 ‘어디’인지에 쏠려 있다. 민간이 주도하든 공공이 주도하든 시장에선 공급대책을 ‘개발호재’라고 읽는다. 투자처를 찾는 현금이 시중에는 여전히 넘쳐난다.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 발표 며칠 뒤(14일) 김현미 당시 국토부 장관은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던 공급부족론을 일축했다. 그리고 3주 뒤인 8월4일 공급대책이 전격 발표됐다. 장관의 발언이 이렇게 쉽게 뒤집히는 것도 놀랍지만 단 3주 만에 10만가구가 넘는 물량을 뚝딱 만들어낸 정부의 능력이 더 놀랍다. 변 장관이 취임일성으로 ‘설 이전’을 언급한 건 이렇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급확대 방안이 무엇일지 예측하기가 어렵진 않다. 변 장관은 이미 ‘힌트’도 많이 줬다. 서울시 내 역세권 및 지하철역 주변 저층 주거지역, 준주거지역, 그리고 민간 주도로는 개발이 힘든 지역 등을 거론했는데 이 같은 곳을 찾는 것 역시 힘든 일이 아니다. 이미 정보가 빠삭한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약서를 쓰고 있을 것이다.

 

현재로선 공급확대가 집값 안정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공급확대를 놓고 별다른 비판이 없는 이유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꺼낼 수 있는 규제카드는 다 써봤다. 보유세나 규제지역 확대 등 규제강도를 더 올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대통령 부정평가가 60%를 넘어가는 이 마당에 불가능한 일이다. 이도 저도 안 되니 공급이라도 왕창 해보자는 심산일까. 정부 심정이 여느 노랫말처럼 ‘에라 모르겠다’는 아니길 바란다.

 

대규모 개발사업 위주의 공급대책은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서울을 떠들썩하게 했던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이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고 시작한 뉴타운 사업은 서울 집값만 올려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길음·은평뉴타운 등의 경우 원주민 정착률이 낮게는 20% 미만으로 나온다. 막상 주거환경 개선의 ‘대상자’ 10명 중 8명이 해당 지역을 떠났다는 얘기다. 상당수는 개발에 따른 추가부담금을 마련하지 못해 약간의 웃돈을 받고 ‘딱지’를 팔고 떠난 사람들이다. 집주인이 이랬는데 세입자들은 어땠을지 볼 것도 없다. 막대한 개발이익은 외지인이나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갔다.

 

주변 집값을 올리는 계기로도 작용한다. 주택은 감가상각이 큰 의미가 없는 재화다. 2~3년 뒤면 같은 동네 신축과 구축 가격이 엇비슷해진다. 옆동네가 10억원인데 우리 동네만 9억원을 받을 이유는 없다. 집값 상승은 전염병이 번지는 것과 비슷하다.

 

의식주 중 부동산 안정문제를 정권에만 맡겨둘 게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1999년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국민건강보험법 등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구축됐다. 주거문제의 경우 2015년이 돼서야 ‘주거기본법’이 제정됐다. 몇 년간 이어져온 집값 폭등은 그나마 마련된 주거기본법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법을 고쳐쓸 가장 적절한 시기다.

 

송진식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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