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옜다! 아파트”
본문 바로가기
기자 칼럼, 기자메모

“옜다! 아파트”

by eKHonomy 2021. 2. 9.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부터 “기대가 된다”며 전 국민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주택공급대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 짓기로 한 가구수가 서울 32만, 전국 83만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다. 대책 발표 전 부동산 업계에서 많게는 “40만~50만가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이 역시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갔다. 당시 보도를 부인하며 “왜 그럼 100만이라고 쓰지 그러냐”던 한 공무원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 셈이 됐기 때문이다. 중복되는 물량을 배제하고 지난해 ‘8·4 공급대책’부터 ‘2·4 공급대책’까지 나온 공급물량을 합하면 액면 98만가구가 넘는다. 정확히 반년 만에 문재인 정부는 100만가구의 주택공급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도 정권 말기에. 기네스북에 주택공급에 관한 기록이 있다면 틀림없이 현 정부의 몫이다.

 

대통령과 예하 관료들이 “창의적, 혁신적, 과감한” 등의 수사를 곁들여 내놓은 이번 공급대책은 불행하게도 ‘졸속’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서울에는 295만가구의 주택이 있는데, 2·4 대책에서 나온 서울 물량은 이의 10%를 넘는 규모다.

 

정부가 지난달 15일 발표한 서울 지역 공공재개발 사업후보지 자료에선 개발 후 주택수가 개발 전 대비 2~3배가량 많다. 32만가구 중 넉넉하게 절반 정도를 기존 주민 몫으로 본다면 16만가구 정도가 분양 내지는 임대 몫이다. 통계청의 2019년 집계에서 국내 가구당 가구원수는 2.4명이므로 산술적으로는 30만명 이상이 새집에 들어오는 셈이다. 30만명이면 지방 중소도시 여러개를 합한 인구다. 물론 30만명이 전부 서울로 순유입될 리는 없겠지만 향후 인구이동이 어찌 될지까지 정부가 따져본 것 같진 않다. ‘도시계획’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분명 졸속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2·4 대책이 특이한 건 엄밀히 말하면 ‘가상의’ 주택을 공급했다는 것이다. 서울의 경우 공공택지가 없다보니 대부분 개인 땅에 새로 집을 지어야 한다. 정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전체 민간 부지 중 “땅주인 넷 중 한 명(25%)은 참여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32만이라는 수치를 뽑아냈다. 다시 말해 땅주인이 계획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이 대책은 무산되거나 변경이 불가피하다. 일론 머스크는 공매도를 비판하면서 그랬다. “없는 집과 없는 차를 팔아선 안 된다”고.

 

정부는 대책을 발표하며 “3040 무주택자들에게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공언했다. 새 주택 대부분은 아파트가 될 것이므로 3040 무주택자들에게 새 아파트를 주겠다는 뜻이다. 늘어나는 주택은 얼마에 분양되는지, 누가 입주할 수 있는지, 공공임대 물량은 어느 정도인지 등은 모두 물음표로 남겨놓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2·4 대책이 선거공약처럼 들린다. 가상의, 빈번하게 실현되지 않는 공약 말이다.

 

정부는 ‘설 이전’이라는 기한까지 정해놓고 대책을 공개했지만 별 ‘효과’는 없는 듯하다. 서울에서 여당 지지율은 야당에 밀리고, 문 대통령 지지율은 대책 발표 전후 별반 차이가 없다. 요새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면을 봐도 느끼지만 막연히 ‘○○을 주겠다’는 식의 공약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나보다.

 

송진식 경제부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