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돌이·삼성전자·이니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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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삼성전자·이니 시계

by eKHonomy 2021. 4. 6.

“요놈이 호돌이라고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 금메달은 금이 아니지만은 요거는 금이 맞아요.”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1980년대 안기부 엄 실장은 부산의 관광호텔 파친코 사업에 뒷돈을 대준 답례로 일본의 야쿠자 두목 가네야마에게 ‘각하’의 감사패를 전달한다. 그러면서 ‘금두꺼비’처럼 금으로 만든 ‘호돌이’도 함께 건넨다. 금메달이라고 해봤자 실제로는 금이 소량 입혀진 도금일 뿐이지만, 이 호돌이는 진짜 금덩어리라는 말을 보탠 것이다. 하고 많은 영화 대사들 가운데 이 말이 떠오른 것은 여기에 ‘가치 평가’에 관한 어떤 실마리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주주가 300만명에 이른다는 삼성전자는 왜 석 달째 ‘8만 전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공모주 청약에 계좌 240만개가 몰려든 SK바이오사이언스는 어째서 ‘따상’(공모가의 2배 시초가에 상한가 마감)엔 성공하고, ‘따상상’(이튿날도 상한가 마감)엔 실패했을까. ‘활성 고객’(구매 유경험자)이 1500만명에 이르는 쿠팡은 뉴욕증시에서 100조원의 가치를 평가받았는데 ‘적자기업’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정답은 없다. 수십년 시장을 들여다본 애널리스트들이 PER(주가수익비율)이나 PBR(주가순자산비율), 한글 이름이 더 어려운 EV/EBITDA(기업가치/이자·세금·감가상각 비용 차감 전 순이익) 등 똑같은 지표를 펼쳐놓고 조금씩 다른 분석을 내놓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 기업만 들여다봐서 될 일도 아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각축을 벌이는 애플과 비교해보고, 반도체 경쟁사인 대만의 TSMC와도 견줘본다. 그나마 상장기업은 낫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통화는 가치를 따져볼 잣대 자체가 모호하기 그지없다.

 

수요와 공급이 극단적으로 어긋나는 물건은 가치 평가가 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서명이 새겨진 ‘이니 시계’는 요즘 25만~30만원, 남녀 2종 세트는 50만~60만원쯤 한다. 네이버카페 ‘중고나라’ 평균 시세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매물 자체가 희귀해 ‘부르는 게 값’인 귀물에서 이제는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뀌었다.

 

한때는 ‘박근혜 시계’가 그랬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 사무총장이 “잘 활용하시라”며 구하기 힘든 이 시계를 당협위원장들에게 나눠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을 정도였다. 당시 퇴임 1년이 갓 지난 이명박 전 대통령의 ‘MB 시계’는 택포(택배비 포함) 3만원에 불과했다. 이런 걸 보면 청와대 시계의 본질 가치는 당시의 지지도나 인기 같아 보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지난해 총선 참패로 이제는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찾아보기 힘든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제작한 ‘황교안 시계’가 ‘이니 시계’ 이상의 대접을 받는다. 단 ‘권한대행’이 박혀 있는 ‘60일 한정판’에만 수집가들이 움직인다.

 

누구에게나 한 번만 주어지는 ‘나의 삶’은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그야말로 ‘한정판’이다. 단언컨대 자신의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금메달과 ‘순금 호돌이’를 맞바꿀 메달리스트는 없을 것이다.

 

정환보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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