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25일) 경향신문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의원이 발의한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김상조 교수의 우려 섞인 경제시평이 게재되었다. 이 법안의 입안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의견을 개진할 기회를 보던 필자로서는 마침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아 이 문제를 다뤄 보려고 한다.
논의를 전개하기에 앞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독자들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밝혀둔다. 이 글은 김 교수를 폄하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김 교수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의 경제학자이고, 필자가 가장 아끼는 후배이자 동료다. 우리들은 또한 이 문제에 관해 이미 여러 차례 서로 팩트와 주관적 평가를 주고받으며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을 확인하였다. 따라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 서로 확인했던 팩트였고, 어디서 서로의 의견이 갈라지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독자들의 판단을 구하고자 함이다.
우선 상호간에 이의가 없는 팩트부터 확인해 보자. 첫째, 범죄수익 환수에 관한 선진국의 법리가 발달하게 된 데에는 마약, 매춘, 테러, 돈세탁 등 반사회적인 조직범죄의 만연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둘째, 주요 선진국은 이런 반사회적 범죄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형사적 몰수, 민사적 몰수·환수, 또는 두 가지 절차를 모두 사용해 왔다. 셋째, 범죄수익 환수제도가 발전하면서 이 제도는 단순히 반사회적 조직범죄의 퇴치를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고, 일반적인 중대 범죄에 대해서도 폭넓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국, 영국, EU 등 주요 선진국은 횡령이나 배임과 같은 재산 범죄에 대해서도 범죄수익 환수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넷째, 민사적 환수 제도는 범죄자에 대한 유죄의 확정이 없이도 사용가능하고, 입증 책임도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정도의 입증이 아니라, 상당한 개연성이 있음을 보이는 정도로 충분하다.
다음은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주관적 평가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의 의견이 일치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한다. 우선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을 먼저 보자. 첫째, 현재 이재용 3남매 등 상당수의 재벌가 후손들이 누리는 부의 대부분은 배임 행위와 연관된 범죄수익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런 범죄수익은 이미 형사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환수되었을 것이다. 셋째,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범죄수익의 환수에 관한 제도를 유효하게 정비하고, 필요하다면 민사상 환수 절차도 도입할 수 있다. 넷째, 아울러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에 관한 법리나 주주의 책임추궁 권한을 선진국 수준으로 제고해야 한다.
제일모직 상장전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 (출처 : 경향DB)
이제 마지막으로 두 사람 사이에 의견이 다른 부분이다. 첫째, 김 교수는 형사적 몰수 절차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범죄수익 환수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 형법이 독일 등 대륙법 계통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민사상 환수절차는 영미법 계통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필자는 민사적 환수제도가 시급히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범죄수익의 환수는 기본적으로 재산에 대한 국가권력의 적용인데, 이 문제를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국가권력의 적용인 형법으로 다스리기에는 논리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김 교수는 법무부 장관이 환수절차를 개시하도록 한 부분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필자는 이번 법안에서 국민들이 법무부 장관에게 특정한 범죄수익의 환수를 요청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일정 기간 이내에 가부간의 의사를 근거를 들어 명확히 밝히도록 했기 때문에, 법무부 장관이 명시적으로 국민들의 일반적 의사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이 법이 너무 막강해서 다른 재벌들의 배임행위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그것이 범죄에서 유래한 재산이라면 원칙적으로 환수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다만 이번 법안은 민사상 환수 절차를 도입하는 첫 시도이므로 실제 적용 범위는 입법 정책적 차원에서 일부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이 법안에 대해 내용과는 무관한 논평이 많았다. 이번 김 교수의 시평은 이 법안에 대한 의미 있는 논쟁을 촉발했다. 앞으로도 이 문제에 관해 기존에 있었던 억지춘향식의 흠집 내기가 아니라, 팩트와 논리, 그리고 국민의 요구에 걸맞은 토론과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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