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에서 법치금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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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전성인 칼럼

관치금융에서 법치금융으로

by eKHonomy 2015. 1. 14.

정부는 올해 4대 개혁 중 하나로 금융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개혁의 내용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핀테크, 인터넷 은행, 실명확인 의무 완화, 액티브X 금지, 이런 것들이다. 과연 이런 것들이 한국 금융의 사활을 좌지우지하는 근본적인 문제인가. 개혁은 기득권과의 싸움이고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금융개혁의 진정한 본령은 ‘관치금융과 금융권력의 결탁구조’를 청산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모피아의 전횡에 더하여 금융권력이 정치권, 언론, 그리고 관료까지 장악하면서 거대한 기득권 구조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결탁구조를 청산한 이후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금융산업이 규제산업인 이상 시장만능주의가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어떤 이들은 ‘법치금융’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여기서 법치금융이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경기규칙을 만들고, 감독자는 그 경기규칙의 취지 하에서 감독하고, 금융회사들은 그런 영업환경 하에서 경쟁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공감한다. 조금 더 보탠다면 금융감독기구는 관치의 청산을 확실히 하기 위해 민간 공적기구가 담당하면 좋겠고, 감독기구의 재량권 행사는 경기규칙의 취지에 기속되어야 하고, 그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하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법치금융에서 멀어도 한참 멀다. 대표적인 예가 지금 하나금융지주가 숨 가쁘게 닦달하고 있는 외환·하나은행 조기합병 건이다. 법치, 원칙, 신뢰라는 단어들은 실종되고 단독처리, 상황논리, 입장 번복 등의 민낯이 설치고 있다.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김석동 전 금융위원장·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 등(왼쪽부터)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몇 개 적나라한 사례를 보자. 조기합병 추진은 지난 3년 전에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체결했던 소위 ‘2·17 합의서’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일종의 증인 역할로 입회했던 금융위원회는 합의서의 취지를 파기하고 조기합병을 하겠다는 하나금융지주를 ‘제지’하기는커녕 조기합병을 위한 노사대화를 ‘종용’해왔다. 최근에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한술 더 떠서 노사합의없이 단독으로 합병신청을 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것 같은 입장을 보였다. 이것이 증인의 역할을 자임했던 감독기구의 수장이 취할 태도인가.

금융위의 입장이 딱해 보였는지, 이를 도와주는 모양새도 법치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해 10월15일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위 국감장에 증인으로 출두해서 선서했다. 그리고는 자기가 가진 합의서에는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얼마 전 시민단체가 공개한 합의서에는 김승유 전 회장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모두 멀쩡히 들어 있다. 그런데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를 보고도 꿀 먹은 벙어리다. 도대체 이 나라에 법이 있는 것인가.

하나금융지주가 법치를 초월한 증거는 도처에 있다. 우선 하나고 불법지원과 관련해서 아직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불법 지원 이후 2013년 7월에 은행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지금은 지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나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때 개정은 은행이 자발적으로 공익법인을 지원하는 것은 허용했으나 그 대신 은행의 대주주가 은행에 대해 특수관계에 있는 공익법인을 지원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계속 금지했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금융지주의 계열회사들이 하나고를 지원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데 금융위는 꿀 먹은 벙어리다.

금융위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연루된 모뉴엘과 KT ENS 부실대출과 관련한 조사와 징계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 두 건에 대한 조사와 징계가 확정되고 나면 아마도 두 은행과 하나금융지주의 경영진 중 상당수는 징계를 받아 금융기관 임원직을 사임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금융위는 부실대출에 대한 뒤처리는 미루면서 이런 대출과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조기합병에만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금융개혁은 바로 이런 불법, 탈법, 초법적 구조와 관행을 바로잡는 것이다. 대통령이 금융개혁의 진정한 핵심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바란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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