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10주기를 맞은 고 정운영 선생의 칼럼 선집 <시선>의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때마침 그 근처에서는 노동개혁(개악) 저지를 위한 민주노총의 총파업 결의 집회가 진행되었다. 훤칠한 키에 잘 어울리는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교실 안에서 담배를 피워 문 채 “내가 <자본론>을 들고 종로에 간 까닭은…”이라며 강의를 시작하던 정운영 선생에 대한 기억이 아득한데,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그치지 않고 있다. ‘인간적 세상’을 향한 선생의 꿈은 정녕 꿈이던가.
뭐가 잘못된 건가. 가장 일반적인 답은 ‘정치’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천박한 경제학자’로서 정치를 논할 능력도 없고 아예 관심도 갖지 않으려 하지만, 특히나 요즘은 신문의 정치면을 들춰보기가 겁부터 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로 접어드는데, 야당발 뉴스는 가히 절망적이다. 아무리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정치판이라고는 하지만, ‘이러다 다음 선거에서도…’라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식하니 용감하다고, 내키는 대로 지껄여보겠다. 현재 야당의 가장 큰 문제점은 리더십 붕괴라고 생각한다. 2012년 대선 당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여당은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도 보스가 딱 결정하면 모두 그리로 달려가는 DNA를 가진 조직’이라고 촌평했다.
여기에 대구를 맞춘다면, ‘야당은 자기네들이 보스를 뽑아놓고도 절대 그 보스를 따라가지 않는 DNA를 가진 조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붕괴된 리더십을 다시 세우는 길은 무엇인가. 혁신? 통합? 비전? 다 좋다. 문재인 대표의 소득주도성장론, 안철수 의원의 공정성장론, 정세균 의원의 분수경제론, 손학규 전 대표의 ‘저녁이 있는 삶’ 등, 뭐라도 좋다. 문제는, 대중이 그걸 믿게 만드는 거 아닌가. 내가 정치에는 문외한이지만, 정치적 슬로건은 참과 거짓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 미사여구로 얼기설기 엮은 정치적 슬로건의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이 바로 리더십일 게다.
내지른 김에 갈 데까지 가보자. 리더십은 그때그때의 현안을 ‘마무리하는’ 능력에서 길러진다고 본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눈앞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설득하고 결단하고 종결하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과정의 누적을 통해, 먼 미래의 거창한 슬로건을 실현할 ‘유능한 경제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야당의 리더십 붕괴는 비전과 정책의 부재가 아니라 현안을 매듭짓는 능력의 결여에서 연유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은행 지분 현황, 우리은행 매각 일지_경향DB
어쩌자는 거냐고? 당내 혁신을 놓고 싸울 땐 싸우더라도, 야당이 집중해서 매듭지어야 할 경제 현안이 널려 있다. 예를 들어, 금융산업의 급선무는 우리은행 민영화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국유화된 지 15년이 지났고, 과거 네 차례의 매각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헐값매각 시비에 걸려 청문회에 불려갈 우려 때문에, 관료들이 마냥 시간을 죽이고 있는 탓이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산업은행보다 더 국책은행스러워졌고, 자산 280조원짜리 은행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이래선 안된다. “빨리 팔아라. 사후 문책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특히 야당이 결단해야 할 일이다.
한편 최근 자본시장의 화젯거리는 단연 한화투자증권의 주진형 사장이다. 삼성물산 합병 때 반대 취지의 보고서를 냈고,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들이 100% 지분을 가진 한화S&C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관행에 제동을 걸다가 경질설에 휘말렸다. 롯데의 ‘손가락 해임’과 다를 바 없다. 재벌개혁의 모든 이슈가 응축된 이 사건이 ‘증권업계의 실패한 이단아’로 소비되는 걸 보고만 있을 건가. ‘15대 경제민주화 법안’을 발표하는 걸로 선명성 내세울 때가 아니다. 현안에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 및 부속 세법 개정안을 보면, 1600만 근로소득자 중 절반인 800만명이 세금을 단돈 1원도 안 내게 되어 있다. 여기엔 침묵하면서, 부자·대기업 증세로 보편적 복지 하자고 주장하는 건 사기극이다.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연 1300만원 초과 소득자는 최소한 월 1만원의 세금은 반드시 내게 하는 ‘근로소득 최저한세’ 도입을 주장할 용기는 없는가. 서민의 세금으로 국공립 보육원 더 짓자고 설득하고, 여기에 매칭해서 부자들도 세금 더 내라고 압박할 용기는 없는가. 금기에 도전해서 현안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하도 답답해서 지껄여봤다.
김상조 |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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