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개혁’ 의지 꺾는 ‘특단의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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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개혁’ 의지 꺾는 ‘특단의 대책’

by eKHonomy 2018. 10. 18.

특단의 경제정책이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이낙연 국무총리는 17일 방송에 출연해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고용의 질을 높이고자 하다보니 고용의 양에서 타격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뜻하지 않게 고통받거나 일자리를 잃은 분들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준비해 다음주에 발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단의 대책’이란 표현은 익숙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에코붐 세대(1991~1996년생)의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각 부처에서 주말에도 출근하며 준비한 끝에 지난 3월 산업단지에 재직하는 청년들에게 월 10만원씩 교통비를 지급하겠다는 등의 대책이 나왔다. 당시 “특단의 대책”이라고 환호하는 목소리는 드물었다. ‘특단’이란 말이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놓은 탓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에도 저소득층과 자영업자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근로장려금이 확대된 정책이 등장했다. 8월에도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강조했다. 근로장려금 확대, 제로페이 등 소상공인 대책과 지역밀착형 생활SOC 정책이 나왔다. 예산 편성은 올해, 집행은 내년, 효과는 후년에 나타난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러나 당장 ‘특단의 효과’가 나오지 않으니 정부의 무능처럼 비친다. 현재의 구조개혁 방향이 잘못됐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상황 변화에 따라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새로운 정책을 내놓으라며 부처를 압박하면 공공기관 인턴 확대처럼 지표상 효과를 봤던 기존 관행을 답습하거나, 특정 업계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숙원사업을 포장해 내놓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특단’이란 말은 그 와중에 ‘청년 교통비 지원’처럼 잘 만들어진 정책이 나오더라도 발표 즉시 실망과 냉소의 바다로 던져넣는 힘이 있다. 정책을 ‘특단’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을까.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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