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가성비’가 대세였다. 불황기에 한 푼이라도 더 아끼려고 생필품은 100원이라도 싼 다이소에서 사고, 가구는 이케아에서 사다 조립하고, 옷은 유니클로 같은 저렴한 SPA 매장에서 사는 소비자들이 많았다. 외식업계도 마찬가지라 1만6000원짜리 호텔 점심뷔페는 2주 전에 예약이 동나곤 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최저가에 괜찮은 품질을 보장할 자신이 없다면 장사를 접어야 할 분위기였다.
그런데 올해 ‘가심비’가 적시타를 치며 역전극을 펼치는 중이다. 지갑을 열었을 때 내 마음이 얼마나 흡족한지가 중요해졌다. ‘소확행’(작고 확실한 행복), ‘나심비’(내가 좋다면 가격 안 따짐), ‘탕진잼’(돈을 마구 써서 기분이 좋아짐) 같은 조어들이 보편화됐다. ‘가성비’ 홍수 속에 가격 나가는 물건은 시장에서 다 쓸려나가는 줄 알았는데 반격의 기세가 대단하다.
“그동안 싼 물건만 잔뜩 샀더니 이젠 ‘가성비’에 질리더라고요. 몇 달 쓰면 부러지고 낡아지는 물건들은 곧장 쓰레기가 되잖아요. 손때 타도 튼튼한 물건 하나쯤 갖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최근 값나가는 1인용 리클라이너 의자를 샀다는 직장인 ㄱ씨의 얘기에 공감했다. 잘 만든 상품은 고유의 매력이 있다. 지난해 ‘에어팟’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감탄한 기억이 난다. 유선 이어폰과 음질 차이가 없는 데다 배터리 수명은 길고 충전도 간편했다. 이 작고 비싸고 혁신적인 액세서리를 만드는 데 참여한 여러 나라의 기술자와 제조업 노동자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을 간접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좀 고민이다. ‘가심비’와 내 지갑이 씨름 중이다. 높은 수준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한 이후 높아진 눈높이를 낮추기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있다. 특히 입맛이 그렇다. 초콜릿은 카카오 등급과 조리법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 무궁무진하다. 진득한 초콜릿캐러멜로 속을 채우고 소금 한두 알을 위에 올려 마무리한 예술작품급의 한 조각을 먹은 뒤에는 웬만한 초콜릿으로는 감동받기 어려워진다. 옷도 그렇다. 보들보들한 캐시미어 스웨터로 겨울 한철을 나면 다시 까끌까끌하고 목덜미가 가려운 폴리에스터 소재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쾌적하고 즐거운 소비경험을 일부러 마다할 이유는 없지만, 이렇게 새로 얻은 행복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지금 내 삶을 구성하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전과 같은 강도의 행복감을 얻으려면 그보다 더 강한 쾌적함과 즐거움이 필요해진다. 하나에 몇 억원씩 하는 시계,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사는 이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엔트리’급부터 시작해 사다보니 거기까지 간 거다.
반대로 소비수준을 줄이거나 낮추면 상실감은 더 커진다. 바로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손실회피’ 성향이다. 살림살이 긴축에 들어간 한 지인은 그간 써오던 국산 고급화장품을 중가 제품으로 할 수 없이 바꾸게 됐다며 조금 우울해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행동심리학에 큰 영향을 준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실험에 따르면 ‘얻을 때’ 기쁨이 1이라면 ‘잃을 때’ 슬픔은 그 2배 이상이라고 한다.
소중한 나 자신에게 좋은 ‘선물’을 주라는 달콤한 ‘가심비’ 마케팅의 속삭임은 다양하고 고급스러운 소비취향을 낳았고, 저가 압박에 줄곧 시달리던 제조·유통업계에도 숨통을 틔워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내 소비수준을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함정’이 될 수 있겠구나 싶다. 소비를 통해 어떤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때, 브랜드와 나 자신을 동일시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건 꽤나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는 거다. 나의 구매력이 사라지는 순간 내 자존감도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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