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씨가 ‘특종’이라며 연락을 해왔다. 자신이 계산을 해보니 지난해 우리나라의 출생아 대비 사망률이 80%에 달한다는 것이다. 태어난 아이 10명 중 8명이 죽는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이게 진짜라면 아이 낳는 집마다 곡소리가 터져나와야 한다. 바보씨에게 물었다. 제대로 계산을 한 것이냐고. 바보씨는 “나를 어떻게 보느냐”며 자신 있게 계산식을 내밀었다.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는 35만7800명입니다. 사망자 수는 28만5500명이고요. 출생아 수에 사망자 수를 나누고 100을 곱하면 80%가 나옵니다. 고로 한국의 출생아 대비 사망률은 80%죠.”
바보씨는 지난해 태어난 아이와 사망한 사람을 비교해 사망률을 구했다. 갓 태어난 아이는 만 0세다. 그런데 사망자에는 60대도, 70대도 있다. 출생아와 사망자 사이에 통계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연히 통계청에서는 이런 통계를 쓰지 않는다.
강신욱 통계청장이 15일 정부대전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통계청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언제부터인가 ‘신규창업자 대비 폐업률 90%’라는 말이 즐겨 쓰이고 있다. 줄여서 자영업자 폐업률 90%라고 부른다. 언론도 쓰고 정치권도 쓰고 자영업자단체도 쓴다. 경제를 잘 안다는 경제학자들도 이 수치를 인용한다. 아무리 자영업이 어렵다지만 신규 창업자의 10명 중 9명이 문을 닫는다는 게 말이 되나. 어떻게 나온 숫자인가 봤더니 바보씨가 사망률을 계산한 딱 그 방식이다. 4대 자영업종(도매업·소매업·음식점업·숙박업) 개인사업자의 2017년 신규 창업자 수는 모두 43만9000명, 폐업자 수는 39만5000명이다. 이 둘을 나눠 100을 곱하면 90%가 나온다. 이를 근거로 새로 문을 여는 자영업자 10명 중 9명이 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태어난 아이 10명 중 8명이 죽는다는 것과 똑같다.
진짜 ‘폐업률’은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통계학에서 ‘비율’이란 전체에서 차지하는 정도다. 그러니까 분모에는 분자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국내 외국인 비율이라고 하면 전체 거주자(한국인+외국인)에서 차지하는 외국인을 말한다. 굳이 폐업률을 구하려 한다면 당해연도에 존재했을 전체사업자(총사업자+폐업한 사업자 수)에서 폐업자 수를 나누면 가장 비슷하다. 폐업자 수가 39만5000명, 당해연도에 존재했을 전체 사업자는 245만2000명(205만7000명+39만5000명)이니까 백분율로 구하면 16.1%가 나온다.
누가 바보 같은 폐업률 계산을 처음 했나 싶어 국세청에 물어봤다. 국세청 관계자는 “모 경제지가 처음 쓴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언론사는 해당 기사를 내린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 받아쓰고 있다. 하도 많은 곳이 인용해서 일일이 정정요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시작은 언론이라는 얘기다. 14년 전에도 똑같은 실수를 했다. 2002년 우리나라 이혼율이 47.4%라는 모 대학원 논문을 2004년 언론들이 그대로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에도 당해연도 이혼건수를 혼인건수로 나눈 것이 문제가 됐다. 가정의 절반이 이혼한다는 기사에 화들짝 놀란 대법원은 “총이혼횟수를 총혼인횟수로 나누면 9.3% 정도”라며 반박했다. ‘혼인율’ 논란은 통계를 왜곡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통계학에서 종종 입길에 오르내린다.
물론 우리나라 자영업자들은 어렵다. 체감적으로는 지난해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제대로 된 통계를 갖고 와야 한다. 그래야 현상에 걸맞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과장된 통계는 축소된 통계만큼 위험하다.
이참에 짚고 넘어가야 할 곳이 있다. 통계청이다. 잘못된 통계가 가짜뉴스처럼 퍼지는데도 입을 닫고 있다. 잘못된 통계를 바로잡고 바른 통계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통계청의 역할이다. 소득재분배 논란 때는 통계 독립성을 지키겠다며 원자료 공개까지 거부하던 통계청이었다. 통계청 침묵의 이유는 무엇일까.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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