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과 촛불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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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인 칼럼

‘헝거게임’과 촛불혁명

by eKHonomy 2021. 2. 22.

<헝거게임>은 불온한(?) 작품이다. 권력에 항거하는 내용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 손가락을 모아 하늘로 드는 모습은 저항의 상징이다. 그런데 지금 미얀마에서 권력은 세 손가락을 든 시위대에 실탄을 발포하고 있다. 사람도 죽었다. 불의에 대한 저항은 소설과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2017년 한국은 촛불을 든 손에 힘입어 불의를 떨쳐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정의를 외치면서 타락해갔다. 적폐청산은 화이트리스트로, 검찰개혁은 정권 사수로 치환되었다. 지난주 정가의 뜨거운 감자였던 ‘민정수석 패싱’ 논란의 근저에는 정권의 타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에 앞서 몇 가지 경제 이슈에 대해 짤막하게 의견을 밝힌다.

첫째, 금융위원회의 공매도 일부 허용 결정은 눈치보기 정책의 결정판이다. 공매도는 당연히 허용해야 한다. 금융위의 과제는 공매도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고 참가자에게 ‘평평한 운동장’을 제공하는 것이지 제도 자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쿠팡 지주회사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 추진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이를 국내의 차등의결권 규제와 연결짓는 것은 고의성이 다분한 진실 왜곡이다. 이번에 상장하는 회사는 미국 메릴랜드 주법에 따라 설립된 유한회사로서 주식회사로 실체를 바꾸어 상장할 뿐이다. 오히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쿠팡이 공정거래법, 대규모유통업법, 노동법 등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다.

 

셋째, 전자금융거래법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빅테크 회사들의 부도 시 가입자들의 예치금을 신속하게 되돌려주기 위해 외부 기관 청산이 필요하다는 금융위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매우 멀다. 별도의 회사정리절차가 적용되지 않는 빅테크 회사의 부도 시 모든 결정권한은 회생법원과 관리인이 가진다. 예금보험 대상이라면 예보의 개입이 있을 수도 있지만 빅테크 회사에 맡긴 돈은 예금보험 대상도 아니다. 외부청산기관이 존재한다고 이런 기본 구조가 달라질 수 없다.

 

‘헝거게임’서 화살을 맞은 자는
폭군 스노 대통령이 아니라
혁명에 성공한 반군 지도자였다
‘자기치유’ 잃으면 타락은 순식간

 

빅테크 회사 내부의 가입자 간 거래까지 외부기관을 통해 청산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 한국은행이 지적한 빅브러더 이슈는 이 경우에 대해 타당하다. 진정으로 빅테크 회사의 내부거래가 의심스럽다면 모든 계좌를 외부 예금기관에 개설하도록 하거나 내부거래 관련 기록을 위·변조가 불가능한 블록체인 형태로 보관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뇌물죄 및 횡령죄로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법무부가 특경가법 위반에 따른 취업제한을 통보했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언론플레이가 한창이다. 무보수 옥중경영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부터 삼성의 대규모 투자는 어찌할 것인가를 걱정해주는 ‘친절한 금자씨’들도 많다. 여기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조직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다. 과연 이 위원회가 ‘준법’의 명령에 따라 이 부회장의 경영관여를 금지하는 권고를 계열사에 발동할지, 아니면 이 부회장의 친위조직으로서 꿀먹은 벙어리로 남을 것인지 궁금하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이 취업 승인, 가석방, 특별사면 등 남은 논점에 대해 혹시 이 부회장과 ‘거래’를 하지나 않을지도 계속 경계해야 한다.

 

이 부회장의 문제는 이번 글의 주제인 ‘정권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아직 이 부회장과 ‘명시적인 거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경계심을 풀기에는 정권의 타락에 대한 자기치유 능력 상실이 도를 넘고 있다.

 

민정수석 패싱 논란의 기폭제가 된 검찰 고위직 인사가 그 좋은 예다. 패싱의 구체적인 경위는 조사가 필요하지만 결국 핵심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검사장의 인사 문제 아닌가. 특히 한 검사장의 경우 ‘결백함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유죄’라는 식의 사실상 처벌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다.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4년째 공석인 이유도 설명불가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굳이 부정하는 것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다. 자기치유 능력을 상실한 정부가 타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헝거게임> 끝부분에서 캣니스가 화살로 처형한 자는 폭군 스노 대통령이 아니라 반군 지도자로서 혁명에 성공한 코인이었다. 권력에 맛을 들이고 전임자와 마찬가지로 타락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숙고해야 한다. 지금 기조를 버려야 한다. 그 첫 단추는 박범계 장관을 경질하고 한동훈 검사장을 복직시키는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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