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감시, 어떻게 할 것인가?
본문 바로가기
전성인 칼럼

권력 감시, 어떻게 할 것인가?

by eKHonomy 2020. 12. 2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돌이켜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있었겠느냐마는 올해는 유난히 그랬다. 특히 법원과 검찰이 시끄러웠다. 새해 벽두부터 이재용 파기환송심을 담당하는 정준영 재판부가 삼성에 새로 준법감시조직을 만들면 이 부회장의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족보 없는 일탈’을 한 결과가 연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소위 ‘추미애·윤석열 갈등’은 추미애의 패배로 막을 내리고 이제 다른 배우들이 등장하는 제2라운드가 시작되려고 한다.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긴 정경심 교수는 실형을 받았다. 이제는 ‘조국의 시간’이 남아 있다.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다. 지난 2월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위기관리 대책을 본격 발표했다.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국민 모두에게 소득 지원도 했다. 잘한 일이다. 상법과 공정거래법에 일부 개혁적인 조항이 추가되었다. 이것도 잘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가 잘못한 일도 부지기수다.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대책이 없었다.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금융감독원을 불법 감찰했다. 자본시장이 제자리를 잡지도 않았는데 한국판 뉴딜이라며 사모펀드에 국민 돈을 퍼붓기로 했다. 그중 일부는 재벌 사업을 지원하기로 하고. 제대로 된 구조조정 방안도 없이 산업은행은 국민 돈으로 한진칼 경영권의 한 자락을 깔고 앉았다.

 

‘1가구 1주택은 괜찮고 1가구 다주택은 문제’라는 흑백논리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투기 수요를 부채질했고, 보유세와 양도소득세를 동시에 강화하는 정책은 시장의 주택 매물 출현을 봉쇄하고 불필요한 조세저항을 가중시켰다.

 

무엇보다 문제인 점은 벤처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재벌 특혜인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 대한 금산분리 예외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주문했다는 것이다. 2년 전에도 문 대통령은 빨간 깃발법을 들먹이며 재벌에게 인터넷전문은행을 허용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아마도 벤처의 허울을 쓴 재벌 특혜의 대미는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복수의결권(차등의결권) 도입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잘못된 정책을 주문하면 누가 견제해야 하는가? 일차적으로 국회다. 그러나 국회는 그 일을 못했다. 경제분야 입법으로 논의를 좁히더라도 편법과 뒤통수치기가 만연했다. 그 백미는 공정거래법 개정이었다. 전속고발권 유지와 기업형 벤처캐피털에 대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정의당을 농락했다. ‘차카게 살 거다’라고 말하면서 법안 통과를 도와달라고 해놓고는 도움을 얻자마자 뒤돌아서서 ‘뒤통수를 빡’하고 내리친 것이다. 정치적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뒤통수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에 반발하는 시민사회와 소통한다면서 청와대 정책실장이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시민단체는 ‘법 통과 다 해 놓고 이제 만나서 뭘 어쩌자는 거냐’라고 항의하면서 ‘복수의결권은 절대로 추진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정책실장이 뭐라고 답변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다음날 바로 대답이 나왔다. 국무회의에서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벤처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이런 게 뒤통수다.

 

대통령 권력이 국회에 의해 올바로 통제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동적이지만 사법부가 통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검찰도 나름 역할을 해야 한다.

 

여기서 ‘누가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인가’라는 어려운 문제가 나온다. 우리 사회가 지난 2년 동안 극심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정립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검찰 권력의 전횡을 말하고, 어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말한다. 어떤 이는 권력과 재벌에 줄 선 사법부의 비겁함을 말하기도 한다. 국회는 늘 동네북이고.

 

그럼 이 문제의 해답은 무엇일까? ‘모든 권력은 감시받아야 한다’는 것이 정답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감시자는 국민이다. 왜냐하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거는 궁극적인 견제장치다. 국민이 실시하는 일종의 ‘신입사원 채용’ 또는 ‘재임용’ 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거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어떻게 감시해야 하는가? 국민이 선출한 권력이 감시하거나 아니면 국민이 직접 감시해야 한다. 검찰에 대한 대통령의 궁극적 통제는 전자의 예이고, 판사에 대한 여론 평가, 소위 ‘세평’은 후자의 예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선출된 권력도 임기 중 부패할 수 있고, 국민 여론에 의한 견제가 불충분하거나 무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집권 세력은 언제나 부패했고,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늘 벽에 부딪혔다. 판사들은 여론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벌 총수에게 거의 언제나 집행유예를 선물했다. 검찰 문제에 대한 해법은 그래도 생각보다 쉽다. 한편으로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하면서, 궁극적으로 대통령에 의한 통제를 가미하면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원에 대한 견제다. 법관 재임용이라는 채찍이 살아 있고, 판사를 그만두면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나 심지어 국회의원으로 일신의 영화를 누릴 수 있는 당근이 아른아른한 상황에서 과연 판사가 대법원장, 재벌, 집권 여당으로부터 자유스러운 판결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얘기다. 당장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물하려는 정준영 재판부가 눈에 밟힌다. 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하면서도 판사를 감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 사회는 그 해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일단 ‘세평 수집’은 열심히 해야 할 듯하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