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난한 왕과 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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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난한 왕과 낙하산

by eKHonomy 2017. 6. 27.

#1.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이 누군지 아세요?” 뜬금없는 질문에 황당해질 찰나 쏜살같이 답이 날아왔다. “최저임금.” 근래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논란을 보면 어김없이 이 아재개그가 떠오른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6470원. 이렇게 주 5일, 하루 8시간 근무했을 때 받는 월 급여는 120만원, 주휴수당을 포함해도 140만원이 안된다. 뛰는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는커녕 최저생계를 유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임금이라도 감당하기 힘든 건 맞다.

 

#2. “은행업은 대출이라는 씨를 뿌리면 제철에 수확하는 농사와 비슷해요. 돈 떼먹지 않을 사람, 그러니까 밭만 잘 고르면 됩니다. 그러니까 은행장이 누가 되든 사고만 치지 않으면 무난하게 할 수 있어요.” 금융권에 낙하산이 집중적으로 떨어지던 시절 한 금융지주 계열 연구소장은 이같이 말했다. 은행은 굉장히 보수적인 조직이어서 전문성이 없더라도 기존 수장들이 해왔던 일들을 따라하기만 해도 경영을 망가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당시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4대 천황’으로 불렸다. 박근혜 정부 때는 서강대 출신 ‘서금회’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

 

어울리지 않는 두 장면이 겹친 것은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1500만명의 월급쟁이 세전소득(2015년도 기준) 집계 보고서를 보면서다. 금융업종 임금노동자는 월평균 578만원을 받아 랭킹 1위였다. 식당과 커피숍 등 음식점업 노동자(173만원)와의 격차가 405만원에 달했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그런대로 굴러가는 은행에서 고임금을 받는 사람과 제대로 쉴 짬과 공간이 없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식당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너무 컸다. 통계는 체감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한참 뒤늦게 이를 증명할 뿐이다. 실제로 임금노동자 평균 월급은 329만원이었는데, 중위 소득(소득이 가장 많은 사람부터 가장 적은 사람까지 한 줄로 세웠을 때 한가운데 사람의 소득)이 월 241만원에 불과한 것은 고액 연봉자가 임금평균을 높이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자가 넓게 포진한 대표적인 곳이 금융권이다. 지난해 신한금융지주·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3억원이 넘는 보수를 받았고, 삼성생명·메리츠증권·현대카드 최고경영자들은 17억원이 넘는 연봉을 기록했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법정근로기준 시간을 기준으로 1년에 3주 정도 일하고 보수로 5000만원 넘게 받았다. 찬성만 하는 거수기로 지적을 받지만 시간당 급여는 47만원이었다. 직업적 전문성이 요구되고 경험과 숙련도가 높을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조직을 정비하고 비전을 제시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고경영자들이나 임원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은 것은 경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무가 크면 그늘도 짙다. 지금 금융권에는 억대 연봉에 최고급 차량과 사무실을 받지만 책임질 일은 거의 없는 ‘꽃보직’이 적지 않다. 정치권이나 전직관료들은 호시탐탐 감사나 이사 등의 직책과 직급을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였고,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금융사들은 눈치껏 이런 자리를 챙겨줬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2008~2016년 사이 금융권 임원으로 온 낙하산 인사는 무려 1004명에 이른다.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도 집요하고 은밀하게 이 같은 자리를 요구하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려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고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하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노동의 가치를 훼손하고 임금불평등을 악화시키는 낙하산용 자리의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적폐를 청산하는 ‘촛불 민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노동을 하면서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무일 뿐 아니라 고액을 받더라도 이를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산업부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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