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괜찮은 일자리’를 공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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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세상/정대영 칼럼

[경제와 세상]‘괜찮은 일자리’를 공약하라

by eKHonomy 2016. 10. 13.

10월은 결실과 수확의 계절이다. 졸업반 학생들이 학교 교육을 마무리하고 진학과 취업 등을 한창 준비할 때다. 기업이나 여러 기관 단체들도 때맞추어 훌륭한 인재를 뽑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학 4학년 학생들은 취업정보를 공유하고 여기저기 시험을 보고 면접을 준비하느라 바빠야 한다. 그리고 일부 빠른 학생들은 이미 취업을 해서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경우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명문대 4학년 학생들도 대부분 이런 경험과는 거리가 멀다. 일부는 취업 재수 삼수를 대비해 자격증 등 스펙을 높이고, 경제력이 있는 일부 학생은 해외 유학을 간다. 다른 학생들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또 일부는 별 대안이 없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무기력하고 답답해 보이지만 진짜 어려운 젊은이들은 아니다.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알바하느라 취업 준비를 못 하는 학생들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견직 등을 전전하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어렵다.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의 관심마저 적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헬조선’, ‘탈조선’은 옛말이 되었다.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과 바로 자살해야 할 처지라는 ‘자살각’이 유행하고 있다. 끔찍할 정도로 자조적인 말이다. 실제 한국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고이고, 청소년 사망 원인의 첫째가 자살이다. 이렇게 젊은이들의 삶이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정도의 괜찮은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 저성장 기조 등 세계 경제의 큰 흐름에도 기인하지만, 한국의 독특한 불평등 구조에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의 상위 10%의 소득집중도는 5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다. 나머지 90%가 절반도 안되는 국민소득을 놓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소수의 직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자리는 질이 좋을 수 없다.

 

역대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주요 정책으로 내세우고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부동산 등 건설경기 활성화, 금리 인하를 통한 투자확대, 고환율정책을 통한 수출확대, 창조나 녹색산업 육성, 대기업에 채용 확대 부탁, 직업훈련 기관 확충 등등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점점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구호마저 사라지고 있다. 정부나 정치권이 아예 포기한 느낌이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청년들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밝아질 방안은 없을까?

 

일부 연구단체나 학자들은 세계화나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찾아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한다. 또 일부는 신문명의 설계, 동북아협력체제 구축 등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이것들은 훌륭한 연구 주제이기는 하나,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는 고담준론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집단은 일자리보다는 복지 확대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복지 확대는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실적인 대안은 한국의 불평등 구조를 고착시키고 일자리 창출을 제약하는 법과 제도, 관행을 조금씩이라도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문제가 많은 행정고시(5급 공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9급, 7급의 공채를 확대하고 승진 기회를 넓히는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고 하위 공무원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다. 카이로프랙터, 발치료사, 독립금융상담사, 탐정, 로비스트 등 한국에 없는 직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개의 새로운 직업이 생기면 수천개의 괜찮은 일자리가 창출된다.

 

OECD 국가들에 비해 숫자가 크게 부족한 의약계열 대학의 정원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것이다. 이는 좋은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의료 서비스를 확충하고 의료인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완화하는 아주 좋은 정책이다. 나아가 의료인 수가 많아지면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의료산업을 수출 산업화하여 일자리를 또 늘릴 수 있다. 이 외에 은행, 신협 등 금융기관의 신설 허용과 초등학교 교원 증원을 통한 하교 시간 연장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있을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의 기존 정당은 이러한 정책대안을 내세우지 못한다.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상위 소득자의 기득권을 줄이지 못하면 일자리 창출도 지속 성장도 어렵다. 2017년 대선을 준비하는 캠프와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정책과 공약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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