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식품의 상품화’가 부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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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장상환의 경제시론

[경제와 세상]‘식품의 상품화’가 부른 재앙

by eKHonomy 2012. 6. 20.

장상환 | 경상대 교수·경제학


2차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세계 각국은 농산물 보호무역과 소농보호 정책을 시행해왔다.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서 농산물은 예외적 취급을 받았다. 각국은 식량자급을 중시했고, 흉작 등으로 필요할 경우 부족한 식량만 수입했다.

농업구조와 관련해서는 재분배적 토지개혁이 실시됐다. 경제적 이유로서 대규모 지주 농장은 제대로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반면, 소규모 가족농을 창출하면 풍부한 노동력을 통해서 토지를 최대로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식민지 해방 후 독립정부는 국가발전 의제로 토지개혁 정책을 제기했다. 냉전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농지개혁 시행을 촉진하는 핵심적 배경이었다. 인기 있었던 사회주의적 토지개혁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은 자본주의적 지향의 농지 재분배를 선제적으로 수행했다. 일본과 한국의 농지개혁이 전형적인 사례다.

 

베이징에 있는 한 식품회사에서 감독관이 생산 과정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ㅣ 출처:경향DB

그러나 1990년대에 상황은 급변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 성립으로 농산물도 자유무역의 대상이 되고 각국은 농업보호 수준을 낮추도록 강요당했다. 농업구조와 관련해서는 가격 지지정책을 후퇴시키고 신자유주의적 농업구조조정, 농지정책을 시행했다. 공유지의 사유화, 국영농장 및 협동농장의 사유화, 농지임대시장과 농지매매 촉진 등이 추진됐다. 사회주의국가의 국영, 집단농장이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멕시코나 페루 등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공유농장과 협동농장의 비효율성 문제가 대두됐다. 농촌에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공유지에 사유재산권을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토지개혁을 뒷받침했던 식민지독립투쟁은 구시대의 일이 됐다. 여기에다 새로운 요인으로서 원주민의 권리, 여성의 토지권 요구, 환경에 대한 관심 증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체제 종식 등도 시장지향적 토지개혁을 요구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세계화 속에서 식품이 국가가 책임지는 필수재의 지위에서 상업적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면서 온갖 모순이 나타났다. 먼저 농업 및 농업관련산업에서 자본의 지배가 심화됐다. 농업기계화가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키면서 공업적 농업이 일반화됐다. 이에 소수의 농민들이 대규모의 농장에서 생산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더욱 많은 투입 농자재를 사용하게 되면서 농자재 산업이 번창하고 집중됐다. 전 세계에서 극소수의 농업관련기업들이 농기계, 사료, 농약, 종자 시장을 지배한다.

세계종자시장의 40%를 몬산토, 듀퐁, 신젠타 등 3개 기업이 지배한다. 작물재배와 가축사육 등 실제 농업생산은 전체 식품체제 가운데 일부에 그치게 됐다. 농업식품체제의 모든 부분이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되면서 농업생산 자체는 식품체제의 한 부분이 되고 소농들은 농업관련 대기업의 하청자 신세로 전락했다. 농민으로부터 소비자에 이르는 동안 농민이 수취하는 몫은 과거 40% 수준에서 현재 20%대로 하락했다.

식품이 상품이 되면서 온갖 모순이 나타나게 됐다. 농업생산력은 높아졌는데 다수가 영양부족에 시달린다. 세계적으로는 10억명이 영양부족에 고통받고 있고, 미국에서조차 5000만명이 ‘식품불안’ 상태다. 저소득층은 싼 가공식품을 섭취해 비만에 시달린다. 식량이 사료나 에탄올, 바이오디젤 등 농산연료로 전용되면서 식품부족과 가격폭등 등 식량위기가 빈발한다. 상품화된 식품에 금융자본이 뛰어들어 매점과 투기에 나서면서 사태를 악화시킨다.

식품의 상품화는 토지 약탈까지 불러왔다. 사적 자본이나 공적 기금이 생산식량을 본국으로 수입할 목적으로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등의 농지를 매입하거나 장기 임차계약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인도 등이 앞장서고 있고 한국도 대열에 가담하고 있다. 식량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품도 교육, 보건의료 등과 마찬가지로 상품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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