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괴뢰당과 역사적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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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직필

[경제직필]괴뢰당과 역사적 총선

by eKHonomy 2020. 4. 2.

왜 예상을 못했겠는가? 국회선진화법까지 무시하며 온몸을 던져 선거법 개정을 거부했던 거대 야당이 괴뢰당을 만들 것을. 그 야당의 괴뢰당은 여당의 괴뢰당을 불렀고,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의 취지는 무력화되기 직전에 이르렀다. 물론 국민들이 괴뢰당에 투표하지 않는 결단을 내린다면 그 개정 취지가 살아날 수도 있겠지만, 괴뢰당을 만든 거대 정당들이 비례대표를 안 내고 다른 정당들과 정책과 지향도 달라 투표자로서는 마땅히 괴뢰당 외에 대안이 없을 법하다. 그런 투표자에게 괴뢰당에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지지하는 당의 꼼수를 처벌할 것을 기대하긴 어렵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당리당략에 따라 경쟁하고 협상하여 사회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대의성을 확보한다. 선거의 전 과정을 관리하는 선거법이 있고, 그 테두리 안에서 정당들을 움직이는 운동법칙이 있다. 전자는 변수이나 후자는 상수다. 후자는 단순하다. 정당이 대표하는 이념과 정책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최다 의석을 확보하도록 행동한다는 것. 개정된 선거법은 이런 운동법칙을 전제할 때 그 취지에 반하는 결과가 얻어진다. 거대 양당은 다른 당의 전략과 무관하게 괴뢰당을 만드는 것이 이득이다. 이렇게 항상 이득이 되는 전략이 선택된다는 것이 합리적 예측이다.


거대 정당이 괴뢰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는 길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았지만 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앞섰다. 적어도 선거법 개정에 나섰던 여당만은 이번 선거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충분히 예견된 거대 야당의 괴뢰당 꼼수에 대응하지 않을 때의 선거 결과를 과연 여당이 수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던 사람도 없었다. 법 개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상수인 정당의 운동법칙을 무시하는 마법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선거가 잘 보여준다. 거대 양당으로 왜곡된 대의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최선의 대의성을 확보하는 정치발전은 지속돼야 한다. 이번 선거 결과는 그 방향을 찾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선거법 개정과 괴뢰당 이슈로 이번 선거의 역사적 의미가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불과 3년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겪었다. 탄핵된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불통과 권위주의에 억눌린 사회가 만들어낸 20대 국회, 이제 그 낡은 옷을 벗어야 할 때다. 지난 3년간 경험한 바, 20대 국회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에서 얻어진 국가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실현하기에 부적합했다. 여야가 국가개혁의 방향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건설적인 공방으로 경쟁하지 못했다. 한편에선 이미 결정된 탄핵의 시시비비, 아직도 상대 당에 대한 종북좌파 색칠놀음으로 힘 빼는 데 급급했고 묻지마 발목잡기 의정활동이 이어졌다. 다른 한편에선 단기적 성과주의와 독선으로 일관하고 개혁보다는 현실정치에 안주하려는 행태가 굳어졌다. 이들의 정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개혁 과제를 해결하여 미래로 향해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고 과거로 향해 퇴보하게 했다.


코로나19 사태와 괴뢰당 난립에 가려진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야 하고 그것이 기준이 되어 국민의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탄핵 정국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가 공통의 개혁과제를 도출했던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대부분의 정당들이, 내용은 달랐지만, 공정경제, 복지국가, 혁신성장이라는 세 가지 축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제는 이 세 방향의 개혁에 대한 중간점검이 필요한 시점이고, 진보와 보수 공히 국가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유능한 정치인과 정당을 가려내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에서 보여준 우리 사회와 국민들의 대응은 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이고 성숙했으며 합리적이었다. 질병관리와 방역체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사회와 언론의 비판을 받아왔다. 그만큼 자기반성과 혁신을 거듭했고 그것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른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짧은 기간 초고속 경제성장으로 내달렸지만 이제 그런 성장의 한계점에 도달했다. 시장과 국가 및 사회 제도 전반의 발전이 빠른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홀했던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공적 감시기구의 정상화, 그리고 사회전반의 부패 척결이라는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혁신적인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정치가 이런 개혁을 주도하게 해야 한다. 개혁에 투표하고 반개혁은 버려야 한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합리적인 개혁세력이 진출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분배정의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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